[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개떡과 비단실

입력 2017-09-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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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은 개떡이면서 말은 비단실처럼 줄줄 풀어 놓는다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자주 아픈 곳을 지적하셨다. 어머니에게만은 아버지의 인간적 신뢰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정미소 큰 솥에서 옥수수를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을 그대로 들고 오셔서 딸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시곤 했는데 그 옥수수를 먹는 볕바른 가을 마루에 앉아 곧잘 옛날이야기를 하셨다. 하늘은 높고 푸르러 가을이 마당을 가득 채운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스무 살 때 진주시장에서 지금의 어느 기업 창업자와 포목장사를 하셨다.

그때의 이야기를 한 천 번은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 것, 그러나 참 많이도 들었고 아버지는 참 많이도 그 기억을 행복하게 말하는 것을 즐기셨다. 자신의 상술(商術)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사람, 그때 내 덕분에 부자(富者)의 길로 들어섰다”고 눈을 지그시 감으시면서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대로라면 비단장사는 ‘즐거운 속임수’를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악랄한 속임수’는 색이 검지만 즐거운 속임수는 분홍빛이라고 얼굴에 환한 미소로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즐겁게 이야기하셨다. 비단을 사는 손님의 흥분을 잘 이용하고 실제로 비단의 장점을 잘 이해시키면서 엄지손가락만큼의 속임수를 즐겁게 사용하는 장사치야말로 고수(高手)라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익을 보면서 손님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업가는 아버지를 최고의 장사치라며 “너는 평생 내 옆에 있어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고 늘 마지막엔 우수에 잠기시곤 했다. 그분과의 인연은 아버지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끝났고, 아버지는 그 ‘즐거운 속임수’를 당신 스스로에게 적용하면서 겉은 번드레하지만 속은 아픈 사람으로 일생 사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대로 과연 아버지의 인생은 개떡이었을까. 가을이 되면 마당이 넓은 한옥집을 그리워하며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신 아버지이지만 내가 봐도 아버지의 인생은 실패 쪽이 더 가깝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셨던 천생(天生) 시인인 아버지는 사랑은 해도 헤어질 줄을 몰라 인생은 더 꼬이고 복잡해졌으며 어머니의 인생을 평생 오그라들게 하였다.

말만은 비단실이었다는 것도 나는 안다. 자신의 실패를 넘어서려고 타고난 언변을 구사하면 모두 혹했던 그 말솜씨는 비단을 능가하게 부드럽고 논리적이었지만 자신의 인생은 억새풀처럼 살을 베이고 살았다. 일생 일기를 쓰신 아버지의 그 감성은 아버지의 마음도 인생도 달래진 못했던 것 같다. 사람도 여자도 딸도 많았지만 아버진 일기장 종이에만 자신을 쏟으며 일생을 마감하셨던 것이다. 외로움은 아버지에게 가장 무서운 호랑이였을 것이다. 외로움을 가능한 한 피해보려고 찾았던 손[手]들은 실상 아버지의 외로움을 더 아프게 했던 싸늘한 바람들이었던 셈이다.

“삿갓 하나 쓰고 돌아다니면 좋겠다.” 첫아이를 낳고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진 가을 하늘을 우러르며 혼잣말을 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의 방황을 그땐 나도 개떡으로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아버지의 외로움이 이 가을 비단실처럼 내 마음을 감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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