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노회찬 의원의 ‘대장균’

입력 2017-07-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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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법’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다른 것에 빗대어 나타내는 수사법”이라고 나와 있다. 시와 산문의 문학뿐 아니라 각종 제품의 홍보 문구, 어떤 단체의 좌우명이나 슬로건도 재미있게 표현해 기억에 남게 하고 눈에 잘 띄도록 적절한 비유를 사용한다. 아마존의 원시림을 지구의 허파에 비유하거나 출퇴근 때마다 숨이 컥컥 막히는 지하철을 콩나물시루에 비유하면 바로 그 뜻과 상황이 연결된다.

문학작품과 각종 제품의 광고 문구만이 아니다. 정치에서도 비유는 아주 중요하다. 최근에 벌어진 일도 그렇다. 국민의당이 지난번 대통령 선거 막판에 퍼뜨린 ‘문준용 씨 취업 의혹 조작 사건’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판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당으로서야 꼬리만 잘라내고 머리와 몸통을 보호할 생각이었겠지만 사건은 이미 꼬리만이 아니라 몸통 부분으로 연결되어 가는 듯하다. 결과를 밝히는 것이야 법이 할 일이겠지만, 사건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오고간 말들의 비유가 재미있다.

국민의당이 증거 조작에 대해 열성 당원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을 내리자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 거기에 딱 어울리는 비유 한마디를 했다. “국민의당은 자꾸 콜레라균을 이유미 씨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단독이든 합작이든 그 콜레라균을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것 아닌가.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 속았다. 이것은 음식점 잘못이 아니라 대장균 단독 범행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그 말에 사람들은 사이다 같은 비유라고 말한다.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노회찬 의원의 절묘한 비유 능력은 이미 예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예전에 한나라당이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차떼기 책떼기로 받던 것에 대해 이제는 그런 정치판을 바꾸자고 말할 때에도 “고기를 먹을 때 구운 고기가 시커멓고 지저분하다고 고기만 바꾸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제는 고기가 아니라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다.

대장균 비유도 그렇고 불판 비유도 정치 언어의 연금술 수준이다. 노회찬 의원의 비유가 정치판에서 사이다로 통하고 사람들이 무릎을 치는 이유는 단순히 그 비유가 갖는 언어적 기술 때문이 아니다. 같은 사안이라도 다른 정치인들이 목소리 높여 정치공방으로 몰아갈 때 그는 몇 마디의 말로 사건의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머를 섞으면서도 그것이 우스갯소리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일정 수준의 절제와 품격이 있다.

들을 때는 유머 같지만 듣고 나면 사건의 핵심을 누구든 쉽게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비유가 쉽게 반박당하지 않는 것도 비유와 현실을 단 몇 마디의 말로 바로 일치시키는 힘 덕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비유에 생명력을 불어넣듯 그 말을 무한재생시키는 묘한 전달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누구에겐가 그 말을 전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말이 다른 정치인의 말보다 뉴스적 가치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입에는 감치게, 귀에는 쏙쏙’ 그것이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먼발치에서도 본 적도 없는 내가 파악하는 노회찬의 정치 비유 연금술이다.

비탄(悲歎)은 시간의 걸음걸이를 헝클어놓고 고요한 잠을 깨뜨려버린다. 밤을 아침으로 만들고 대낮을 밤으로 만들고 만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비유다. 아마도 정치조작의 대장균과 관련된 사람들, 시간의 걸음걸이가 헝클어지고, 아침이 밤 같고 낮이 밤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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