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해밀턴과 오바마와 박근혜

입력 2017-02-03 10:54 수정 2017-02-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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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장을 앞두고 핫한 뮤지컬 ‘해밀턴’을 예약하려다 놀랐다. 올해 8월까지도 여전히 공연 티켓을 구할 수도 없었고, 구한다 하더라도 관람료가 100만 원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뮤지컬의 최종 등용문이며 각축장인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가는 뮤지컬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인정되는데, 그 뮤지컬 중에서도 매진에 엄청난 관람료까지! ‘해밀턴’은 현재 세계 뮤지컬의 승자인 것이다. 토니어워즈 11개 부문 수상, 그래미상, 퓰리처상, 에미상 등 분야별로 대표적인 상들을 받았고, OST가 2015 빌보드 베스트 앨범 2위에 오른 것으로도 그렇다.

그리고 뮤지컬 ‘해밀턴’을 낳은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는 특별한 미국인, 사회 공헌도가 크고 천재성을 지닌 미국인들이 받고 거금의 상금을 5년이나 받는다는 맥아더 펠로십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진짜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엄청난 뮤지컬의 작곡, 연출, 주연까지 그의 몫이다.

미국 지폐에 새겨진 미국 건국 신화의 주역 알렉산더 해밀턴이 뮤지컬의 소재다. 그래서 무대의상은 모두 당시의 고전 의상이다. 그런데 이 역사 뮤지컬이 혁신적인 건 힙합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태조 이성계를 소재로 한 뮤지컬에서 한복을 입은 배우들이 신나게 힙합 노래를 부르는 격이다. 힙합을 중심으로 팝, R&B로 엮인 송스루(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의 곡들이 누가 들어도 엄지를 치켜올릴 수밖에 없게 탄탄하고 역동적이고 수려하다.

그 외에도 뮤지컬 ‘해밀턴’을 상징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린 마누엘 미란다는 ‘해밀턴’을 7년이나 다듬고 다듬었다. 그런데 그는 미국 사회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당하는 이민자 푸에르토리코의 후예다. 그런 그가 미국의 영웅주의에 작품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암표와 위조표가 너무 많아서 티켓 가격을 100만 원대까지 올렸고, 올해는 세계 뮤지컬 시장의 최고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시가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까지 올린다는 뮤지컬을 미국에 안겨 줬다.

그런데 이 너무나 미국적인 뮤지컬 ‘해밀턴’의 행보에서 지금 한국의 정치와 정치가를 돌아보게 돼 씁쓸하다.

7년 전, 전작 뮤지컬 ‘인 더 하이츠’로 백악관에 초대된 린 마누엘 미란다는 거기서 엉뚱하게도 당시에 단지 구상만 하던 뮤지컬 ‘해밀턴’의 한 곡을 힙합으로 불렀다. 노래 가사 중에 언급되는 알렉산더 해밀턴 이름에 사람들은 웃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기립박수를 쳤다. 그리고 7년 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뮤지컬 ‘해밀턴’은 완성됐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공연 팀을 백악관으로 불러 7년 전에 웃었던 자신과 백악관 사람들의 경솔함을 사과하듯 진지하게 공연을 관람했다. 부부 동반으로 감상하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통령이 바뀌고 트럼프 정권의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공연을 관람했는데 하필 그날 해밀턴 역을 맡은 배우는 동성애자에 에이즈 보균자인 하비에르 무뇨즈(Javier Munoz)였다. 그날 공연 후 배우들은 평소 성소수자들의 설 땅을 좁혀 온 펜스 부통령에게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 내용은 “우선 공연 보러 와 줘서 고맙다. 뮤지컬 ‘해밀턴’은 남성과 여성,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 출신과 지향이 제각각인 우리 위대한 미국인의 이야기다. 그런데 다양성의 기치를 내건 미국은 새로운 행정부가 우려된다. 새 정권이 우리를, 우리 아이를, 우리 부모를 보호하는 데 소홀하지 않을까, 우리의 권리를 수호해 주는 데도 소홀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부디 우리 공연을 통해 새 행정부가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뮤지컬 ‘해밀턴’의 7년간의 미국 정부와의 인연은 한국 정부와 참 다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로 얼룩지고 차은택의 하루살이 뮤지컬 ‘원데이’ 공연 무대에서 대통령이 듣도 보도 못한 그 뮤지컬을 근거도 없이 극찬한 지금 우리의 현주소,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청와대의 실체에 뮤지컬 ‘해밀턴’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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