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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유럽 밖의 영국, 유럽 외의 러시아

전 주러시아 대사·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브렉시트를 보고 러시아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통점과 상이점이 있고, 관련도 있다.

우선 유럽을 중심에 놓고 보면 러시아나 영국 모두 유럽으로부터 멀어지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래 유럽과 대립 국면에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진행되던 러시아와 유럽 간의 협조 기운은 사라지고 양측의 분리는 현저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에서 이탈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현상이 유럽의 동쪽 변두리와 서쪽 변두리에서 벌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동쪽 끝의 러시아나 서쪽 끝의 영국 모두 유럽과는 다른 정체성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유럽의 멤버이고자 하면서도 유럽과 별개의, 유럽과 다른, 유럽보다 나은 무엇이고자 하는 정체 의식을 갖고 있다.

상이점도 있다. 러시아의 정체성 속에는 유럽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이 동시에 들어 있으나, 영국의 경우는 우월감이 자리한다는 점이 다르다. 영국에서는 오랫동안 대륙에 대해 갖고 있던 명예로운 고립이라는 개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가 유럽연합(EU)을 떠나겠다는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명예로운 고립이라는 개념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유럽문명의 주변부이자 후발주자이면서 강대한 세력과 대단한 성취를 이룩했으므로 중심부 유럽에 대해 인정 콤플렉스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힘에 대한 자의식도 갖고 있는 이중적 심리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브렉시트가 불거진 시점도 묘하다. 우선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이 탈냉전 시기 중 최고조에 달한 때에 이 일이 생겼다. 마침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의 새로운 공격성에 대해 단합하여 대처해야 한다는 유럽 내 목소리가 높고 그러한 기류의 맨 앞에 영국이 있었는데, 영국이 EU를 탈퇴한 것이다.

이제 브렉시트 사태로 유럽의 단합 흐름에 타격이 가해지자 이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관점이 무엇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념상 러시아는 단합된 유럽을 버거워하고 분열된 유럽의 개별 국가와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므로 지금의 상황을 나쁘게 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러시아에 강경한 영국이 없는 유럽을 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이 빠지고, 이완된 EU가 무역이나 자본 협력 등 실질적 경제 측면에서 러시아에 득이 안 될 수도 있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고립과 제재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모색을 하고 있다. 일종의 타협을 구하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러시아 특유의 기질과 정체성상 그 접근방법은 유화적이 아니라 공세적이다.

예컨대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반군이 일정한 정치·군사적 위치를 정립하자 러시아는 휴전을 성립시켰으며, 반군을 통제하면서 휴전을 유지하는 데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서 서방과 타협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서방은 러시아가 크리미아 합병과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반군 부양이라는 기정사실 위에서 상황을 봉합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호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러시아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공세적 행보를 보였다. 시리아에 파병하고 공습을 시작한 것이다. 명분은 테러리스트 그룹에 대한 전쟁이지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군이 테러리스트 그룹만이 아닌 친미 온건 반군에 대해서도 공격을 가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명분상으로는 미국 등 서방과 협력하는 것이나 내심은 아사드를 부양하는 것이니 서방과 엇나가는 것이다. 결국 겨냥점은 서방과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동시에 위력도 보여주어 러시아와 협력하고 타협하는 것이 유익함을 각인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시리아에서 일정한 군사적 성과가 거양되자 러시아는 전격적으로 주력 부대 철수를 발표하였다. 그럼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에 일정한 기여를 한 기록을 남기고, 지속 작전을 할 경우 생기는 부담을 덜며, 아사드 정권 부양 작전이 서방과의 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였다.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전투를 하는 동안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안정세가 현저해졌다. 러시아는 이런 식으로 서방에 대해 응수타진을 한다.

그런데 서방 측이 바로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접근 방식에 공격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브렉시트가 있으니 러시아가 이런 접근 태도를 강화할 소지도 있다. 앞으로 서방이 러시아 특유의 접근 방법에 어떻게 나올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서방 측 내부에는 그간 몇 갈래 흐름이 있었다. 서방 중에서도 독일, 프랑스는 러시아를 계속 대립 구도에 둘 수만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이들은 러시아와 협의하여 휴전합의도 이끌어 내고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와 발트 3국, 북유럽 국가 등 러시아와 근접한 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러시아에 대한 강한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

한편, 유럽보다 더욱 퓨리탄적인 정서를 가진 미국은 상대적으로 원칙적 자세를 취해왔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단합된 입장을 유지하도록 독려해왔다. 미국은 계속 대서양 안보 협력의 틀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활용하여 단합된 대응을 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NATO에는 영국이 여전히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몇 갈래 흐름들이 뭉뚱그려져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계속 연장되고 러시아 접경 지역에 대한 서방의 안보 태세는 강화되면서도 러시아와 서방 간의 관계는 조금씩 대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간 단절되었던 NATO와 러시아 간의 1차 대화가 열린 것이 하나의 신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발트 3국과 폴란드에 5000여 병력을 배치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점증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또 NATO는 유럽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가속화하기로 하였다.

다른 한편, 바르샤바 NATO 정상회의 직후인 7월 13일에 NATO와 러시아 간의 2차 대화가 열렸다. 러시아가 바르샤바 정상회의 결정을 해명하라고 으르렁대고 있으나, 그러면서도 모스크바에는 대화 재개에 기대를 거는 기류도 완연하다.

또 다른 타협 조짐은 시리아에서도 발견된다.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에서의 작전을 위해 상호 협력과 정보 공유의 정도를 높이는 데 합의한 것이다. 러시아의 시리아 작전에 대해 그간 미국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음에 비추어 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선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조짐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고 사태 여하에 따라 급전직하할 소지도 있다.

제재와 고립 구도하에서 곤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공세적으로 타협을 추구하려는 러시아, 상이한 대러시아 관점을 내부에 안고 있는 유럽, 그리고 원론적인 접근을 하는 미국이 향후 어떠한 정책 행로로 나아갈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로서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 국제 정치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벌이는 상위 게임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당면한 현안들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 러시아와 브렉시트 같이 의외로 연계되어 있는 일이 또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가 유사한 예이다. 우리는 사드를 한·중 관계나 한·러 관계의 맥락에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러시아에 이 문제는 이미 미국 및 유럽국가들과 유럽에서의 미사일 방어망 배치를 두고 벌여온 분쟁의 연장선에 있는 문제이다. 러시아는 유사한 방어망이 아시아의 한반도에 생기는 것이라고 보고 유럽에서 하던 논리와 행보로 사드에 대처하려 한다.

마침 바르샤바 NATO 정상회의에서 유럽 미사일 방어망 배치 가속화가 정해졌으므로 러시아는 좀 더 자극을 받았을 수 있다. 그 여파는 사드에도 미칠 수 있다. NATO 회의를 보고 사드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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