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여성박물관 현지취재] <8>베트남 ‘여성박물관’

입력 2015-09-02 14:38 수정 2015-09-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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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 전사로… 굴곡진 역사 함께한 여성의 삶 기려

1987년 건립 ‘아시아 인기 박물관’ 6위에 올라… 유물·자료 2만5000점 전시

베트남 여성 문화·정신 한눈에… 해방전쟁 당시 활약상 담은 전시장 인기 최고

▲이동식 노점으로 사용했던 베트남 전통지게 ‘꽝 가인’과 자전거.
▲이동식 노점으로 사용했던 베트남 전통지게 ‘꽝 가인’과 자전거.

‘빵빵’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오토바이(베트남 대표 이동수단)를 탄 여성이 비키라고 신호를 보낸다. 커리어 우먼의 면모를 뽐내는 여성들이 헬멧과 마스크로 완전무장하고 출근길 대열에 합류한다. 한 어린이집 앞에는 오토바이가 빼곡하게 늘어섰다. 주인은 바로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엄마들이다.

전통시장에서도 베트남 여성들은 바삐 움직인다. 어머니의 지게라고 불리는 꽝 가인(Quang ganh, 대나무 장대 양끝에 광주리를 매달고 그 안에 물건을 담아 운반하는 베트남식 전통 지게)에 꽃과 과일, 채소, 생선 등을 한가득 싣고 다닌다. 이동식 노점상이다. 여성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지만, 한쪽 어깨로 무게중심을 잡고 거뜬히 짊어진다. 베트남 여성들의 일상이다.

베트남 여성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남성 못지않은 강인함과 책임감으로 가정 안팎에서 제 역할 이상을 해낸다.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이 같은 베트남 여성의 삶과 정신,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해답을 베트남 여성박물관에서 찾았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중심가에 위치한 여성박물관은 약 2만5000점의 유물과 자료를 전시, 베트남 여성들의 문화와 관습, 유물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2014 아시아 인기 박물관 TOP 25(여행 웹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 조사)’에서 6위에 오를 정도로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 높은 명소로 꼽힌다.

▲여성박물관 1층에 세워진 ‘베트남의 어머니’상.
▲여성박물관 1층에 세워진 ‘베트남의 어머니’상.
여성박물관 건립에서부터 유물 수집, 운영까지 일련의 과정은 베트남 여성들의 남다른 의지와 결집력을 알게 한다. 베트남 여성들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정부와 투쟁(?)했다. 유교문화와 봉건적 잔재로 인해 남성 중심 사관이 강한 데다 여성에 대한 억압도 심해 박물관 설립은 쉽지 않았을 터. 이에 베트남여성연합(이하 여성연합)은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바로 역사책을 만든 것이다. 1974년 처음으로 역사책을 펴냈고, 6년 후 한 권을 더 만들었다. 여성연합은 지속적으로 정부와 민간을 향해 박물관 건립의 타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부지를 포함해 예산을 지원, 1987년 드디어 여성박물관을 건립했다.

이후 전국에 걸쳐 있는 여성연합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54개의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유물과 자료를 수집했고, 다양한 재원을 확보하면서 박물관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1990년 2월 지금의 박물관 자리로 옮겼고, 본격적으로 박물관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 베트남 여성박물관은 총 면적 약 2000m², 4층 규모다. △가정에서의 여성(결혼, 육아, 가사) △역사 속의 여성(전쟁영웅) △여성들의 패션 등 세 개의 주제로 구성, 스토리 중심으로 짜임새 있게 여성들의 삶을 담아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베트남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3.6m 높이의 금빛 여성 동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어린아이를 어깨 높이에서 안고 있는 형상으로 어려움과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자 애쓰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한다. 베트남 여성상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유선형 계단을 통해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가정을 만들어 가는 여성의 모습을 관람객의 동선에 맞게 꾸며놨다. 결혼과 출산, 아이를 키우는 방법, 아내로서의 역할, 수렵채집활동, 가사 등 다양한 역할을 실제 베트남 여성의 경험담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응엉 티 항(Duong Thi Hang) 베트남 여성박물관 부관장은 “우리 박물관이 관광객들의 매력을 끄는 이유는 전시구도에 있다. 전시유물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 이해도를 높였다. 관람객들이 작성한 방명록에도 이 같은 평가가 많다”고 말한다.

▲1946년 항불전쟁 당시 프랑스에 맞서 싸운 여성 게릴라 부대.
▲1946년 항불전쟁 당시 프랑스에 맞서 싸운 여성 게릴라 부대.
3층 전시관은 국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여성들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오래된 흑백사진과 어깨에 총을 메고 게릴라 활동을 하는 여성 유격대 모습, 영웅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 해방 기념 포스터, 전쟁도구 등이 가득하다. 특히 베트남전쟁 중 투옥과 고문, 심문 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모습을 움직이는 이미지로 상세히 묘사해 그들의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보여줬다. 이곳은 외국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높은 공간이란다.

▲베트남 소수민족들의 전통의상.
▲베트남 소수민족들의 전통의상.
맨 위층은 베트남 여성들의 패션 전시장이다.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직접 지어 입는 전통의상부터 독특한 모자, 화려한 장신구까지 섬세한 여성미가 느껴지는 패션 아이템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밖에 박물관은 전시회, 특별기획전 등을 통해 규모를 키워 나가고 있다. 세계 여성의날인 3월 8일과 베트남 여성의날인 10월 20일에는 해마다 주제를 정해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올해는 해방 40주년 기념 전시를 연다. 또한 베트남 여성의 국제결혼에 따른 다문화 가정과 관련한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응엉 티 항 부관장은 “베트남 여성은 국제결혼의 경우 대만, 한국, 중국 남성들과 결혼한다. 본격적인 전시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단계다.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여성박물관 현지취재] <8>응우옌 티 빗 반 베트남여성박물관장

“박물관 건립에 앞서 여성 역사책부터 출간을”

“여성박물관을 짓고 싶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발목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와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베트남 전통의상에 내추럴한 단발머리로 담백한 우아함을 뽐내는 여성이 환한 미소와 함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씬 짜오(Xin chao, 안녕하세요)’. 베트남 여성박물관장 응우옌 티 빗 반(Nguyen Thi Bich Van ·사진)이다.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로 다정스레 말을 건네는 응엉 티 항(Duong Thi Hang) 부관장이 함께 했다. 5평 남짓 되는 관장실은 아기자기한 소품과 고서(古書)로 가득했다. 탁자 옆 수반에는 알록달록 예쁜 꽃잎들이 떠 있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두 사람은 베트남 여성박물관의 태생부터 같이했다. 이들이 지금의 여성박물관을 건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태어나 자랐고, 하노이 문화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87년부터 지금까지 28년간 오로지 여성박물관을 위해 일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박물관 설립에 있어서 만큼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며 공을 정부로 돌렸다. 국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박물관 설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성박물관을 짓기 위해 만든 역사책.
▲여성박물관을 짓기 위해 만든 역사책.
엉 티 항 부관장은 “베트남 여성회가 정부에 박물관 건립을 위한 부지 제공을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부지와 자금을 지원하면서 홍보부 간부를 총괄 책임자로 파견, 여성을 위한 역사관을 먼저 세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베트남 전국여성연합회도 힘을 보탰다. 연합회 간부들의 기부금과 모금활동, 유물 기증 등을 통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물관 설립에 선행돼야 할 중점 사안으로는 여성의 역사책을 꼽았다. 응엉 티 항 부관장은 “여성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의 역사에 대해 먼저 알고, 여성운동가들이 이 부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약 300쪽 분량의 책 두 권을 보여줬다. 낡은 책표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바랜 책장을 넘기니 빼곡한 글과 사진 등이 역사를 느끼게 한다. 그는 “여성연합회가 나서 1974년에 여성 역사책을 만들었다”며 “국가와 여성단체가 적극적으로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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