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통합진보당의 숨은 목적?

입력 2014-12-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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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탈무드 이야기이다. 유대인과 러시아군 장교가 기차의 같은 칸에 마주 보고 앉았다. 유대인과 여행하는 것이 못마땅한 러시아군 장교, 유대인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이를 확 낚아채더니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유대인이 말했다. “무슨 짓이야?” 러시아군 장교가 대답했다. “여기는 금연이야.” 다시 유대인이 말했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물고만 있으려 했다.” 그러자 러시아 장교가 하는 말, “예비행위로 보였다. 예비행위도 행위에 준한다.”

한참을 가다 이번에는 러시아군 장교가 신문을 펼쳐 들었다. 순간, 유대인이 이를 빼앗더니 좍좍 찢어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러시아군 장교가 화를 내자 유대인이 말했다. “예비행위도 행위에 준한다.” 러시아군 장교가 물었다. “예비행위라니?” 유대인이 대답했다. “객석에서 변을 보면 안 되지.”

잘못된 생각일까.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판결문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추정에 또 추정, 확대해석에 또 확대해석, 판결문의 내용이 이렇게 들렸다. ‘예비행위도 행위에 준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하자.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낡은 이념에 잡혀 있는 것도 싫고,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것도 싫다. 그 일부 지도자들의 말장난이나 ‘일꾼’이니 뭐니 하는 북한식 표현은 더욱 그렇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를 해산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르다. 다들 하는 말이지만 민주사회에 있어 정당의 생명은 기본적으로 유권자 손에 맡겨야 한다. 소수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말처럼, 헌법재판을 포함한 다른 수단들은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수단’일 뿐이다.

할 수 없이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수단’에 의할 때는 그야말로 그만 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 헌법재판소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이 엄밀한 논리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얼마나 잘 설명되고 얼마나 잘 증명되어 있을까? 판결문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도 탈무드의 그 이야기 수준이다. “예비행위도 행위에 준한다.”

우선 목적 부분이다. 판결문은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우리 헌법이 용납하지 않는 북한식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경과체제라 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강령 어디에도 그러한 내용이 없다. 소위 ‘자주파(NL)’의 주장 등 여러 정황을 보면 그렇게 판단된다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이를 ‘숨은 목적’이라고 했다.

사실일 수 있다. 즉 ‘숨은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후적이고 보충적 수단’이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이 이 정도의 추정으로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런 건가? “숨은 목적도 목적에 준한다.”

활동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그 위험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선동’ 발언을 들었다. 즉 이 전 의원이 곧 통합진보당이라는 논리이다. 여기에 비례대표 부정 경선과 중앙위원회 폭력사건 등을 더해 “언제든 위헌적 목적을 정당의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이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추정에 확대해석, 그래서 탈무드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예비행위도 행위에 준한다.”

탈무드 이야기가 서로 간의 증오를 반영한 것이라면,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중적 정서, 즉 북한의 존재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보적 움직임에 대한 비호감과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대중적 정서가 재판관들로 하여금 추정과 확대해석을 거듭하게 만든 것 같다는 말이다.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럴 만한 소지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은 헌법재판이다. 대중적 정서를 따라가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견고함에 비춰 통합진보당이 지닌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보다 사실적이고 엄정한 판단을 했어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대중적 정서를 따라가면 자유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 체제 자체의 편향성이 더욱 심화되면서 그에 따른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았나? 인용 결정을 한 8명의 재판관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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