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와 최운정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11-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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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정이 LPGA투어 윌리엄 앤 마우지 파월을 수상했다. 한국인으론 처음이다. 실력만으론 받을 수 없는 상이기에 그 의미를 더한다. 엘리트스포츠와 승리 지상주의 속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한국 체육계에 던지 강렬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뉴시스)

잊히지 않는 미소가 있다. 방금 꽃망울을 터트린 듯 풋풋한 미소로 사람을 맞이하던 한 소녀다. 소녀를 처음 본 건 2004년의 어느 날이다. 당시 세화여중 2학년이던 소녀는 ‘박지은(35ㆍ은퇴)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10년 뒤 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롤렉스 어워드에서 윌리엄 앤 마우지 파월(모범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최운정(24ㆍ볼빅)이다.

스테이시 루이스(29), 리젯 살라스(25ㆍ이상 미국)와 윌리엄 앤 마우지 파월 후보에 오른 최운정은 동료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수상자 영예를 안았다.

실력만으론 받을 수 없는 상이다. ‘맨발투혼’ 박세리(KDB산은금융), ‘슈퍼땅콩’ 김미현(이상 37ㆍ은퇴), ‘세리키즈’ 신지애, 박인비(이상 26ㆍKB금융그룹)도 받지 못했다.

1986년 제정된 이후 줄리 잉크스터(54ㆍ2004년), 나탈리 걸비스(31ㆍ2007년), 로레나 오초아(33ㆍ2009년), 미야자토 아이(29ㆍ2012년)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인은 최운정이 처음이다.

박세리는 1998년 메이저 대회 2승(LPGA 챔피언십ㆍUS여자오픈) 포함 4승을 차지하며 한국인 첫 신인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베어트로피(최저타수), 2007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신지애는 한국인 첫 상금왕(2009년)에 올랐고, 박인비는 지난해 올해의 선수상과 상금왕, 다승왕을 휩쓸며 3관왕이 됐다. 실력만으론 이미 세계 최강임을 수차례 증명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직접 뽑은 ‘올해의 선수’ 명단에는 한국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능사였다. 그것이 국위선양이자 출세라 생각했다. 챔피언에게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2인자의 소외감을 가중시켰다. 엘리트스포츠와 승리 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다. 그래서 최운정의 윌리엄 앤 마우지 파월 수상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1988년 故 구옥희의 LPGA투어 첫 우승 이후 26년 만에 첫 수상이라는 점도 의미를 더한다.

최운정은 지난 2009년 LPGA투어에 데뷔했지만 단 한 차례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롤모델 박지은을 너무나도 열심히 닮아가고 있다.

박세리와는 또 다른 노선에서 한국 골프사를 써내려간 박지은은 실력과 미모, 지성까지 겸비한 흔치 않은 스타였다. 무엇보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조화를 주장했다. 기술적인 요소는 기본, 골프팬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엔터테이너 기질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박지은을 누구보다 존경했던 소녀가 최운정이다.

최운정은 박지은 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매년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에서 남다른 성실성을 엿볼 수 있다. 2012년 상금순위 20위(63만4622달러)에서 지난해 17위(73만9441달러)로 소폭 상승했고, 올해는 30개 대회에 출전해 10차례 ‘톱10’에 진입하며 10위(102만9322달러)에 올랐다. 이런 속도라면 내년에는 첫 우승과 각종 타이틀 상위권 진입도 기대할 만하다.

올 시즌도 LPGA투어엔 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17세 천재소녀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최연소 신인왕에 올랐고, 미셸 위(24ㆍ미국)는 그간의 부진을 털고 제2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무엇보다 박인비와 스테이시 루이스는 시즌 내내 하나뿐인 ‘골프여제’ 자리를 놓고 자존심 경쟁을 펼치며 주목받았다.

그 속에서 최운정은 유난히 곱게 빛난 별이 아닐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기록만이 스포츠 스타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입증했다. 엘리트스포츠와 승리 지상주의 속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한국 체육계에 이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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