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 루이 16세(1754.8.23~1793.1.21)는 루이 15세의 둘째 손자다. 1761년 세손(世孫)인 형 부르고뉴 공작 루이 조제프 자비에가 사망한 데 이어 4년 뒤 아버지인 세자 루이 페르디낭도 사망했다. 1770년 오스트리아의 왕녀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한 루이 16세는 1774년 루이 15세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초기엔 존경받는 왕
클로드 아실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생제르맹 앙 레에서 도자기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성적이고 겁 많은 성격이었지만 일곱 살 때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덕분에 유력 인사의 지원으로 1872년 파리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
김대건은 1821년 8월 21일 태어나 1846년 9월 16일 순교한 천주교 성인이다. 영세명 안드레아. “그는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천주교가 박해받던 조선 말기에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천주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아동문학가 박경선 ‘김
“백제 장군 계백(607~660.8.20은 단 5000명의 결사대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군사 5만 명과 대적하다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 ‘충절의 표상’으로 부를 만하다.”(아동문학가 박연아 ‘계백’)
그는 660년 당나라 신구도대총관(神丘道大摠管) 소정방이 지휘하는 수군 13만 명과 신라 대장군 김유신이 이끄는 육군 5만 명이 수륙 양면에서 백제를
가브리엘 ‘코코’ 샤넬(코코는 애칭)은 1883년 8월 19일에 태어나 1971년 1월 10일 숨진 프랑스 패션디자이너다. 그녀는 20세기의 패션, 나아가 여성사를 바꾼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끈 달린 핸드백, 뒤꿈치가 보이는 샌들, 향수 ‘샤넬 NO.5’까지 그녀가 창조한 모든 스타일과 향기는 오늘날까지도 여성들의 꿈, 그 자체를 대변한다.”(앙리 지델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8.18~1825.5.7)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쌍벽을 이뤘으나 영원히 모차르트라는 벽을 넘지 못한 이탈리아 음악가다. 그래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2인자”(한국 월간 음악잡지 ‘더 뮤지컬’)로 불린다.
특히 179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는 그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거나 작품을 베꼈다는 소문이 퍼
“페르마는 현대 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수학과 확률론을 창안하였으며 미분학과 해석기하학의 기초를 닦았다.” 일본의 저명한 수학자 야노 겐타로(矢野健太郞)가 자신의 저서 ‘위대한 수학자들’에서 말했듯 피에르 드 페르마(1601.8.17~1665.1.12)는 수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업적을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 변호사다.
그는 원래 오를레앙대
‘터미네이터’ ‘아바타’ 등 수많은 흥행작을 남긴 미국 영화감독 겸 제작자 제임스 캐머런은 1954년 8월 16일 태어났다. 콘텐츠기획자인 임재훈은 그의 책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에서 “제임스 캐머런은 주인공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했다.
출생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15세 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영화 ‘2001년 스페이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1926.8.15~1956.3.20)의 시 ‘목마와 숙녀’의 한 대목이다. 연세대 교수인 문학평론가 오문석은 저서 ‘박인환’에서 그를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경계에 서 있는 시인”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통속을 싫어하고, 원고 쓸 때는 구두점 하나
엔초 페라리(1898.2.18~1988.8.14)는 창의력이 철철 넘쳐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무기로 광적인 성능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의 자동차는 속도와 매력, 성능과 동의어가 됐다. 특히 F1 그랑프리 경주에서 그의 자동차는 레이서들의 필수품이 됐다.”(비즈니스 전략가 피터 피스크 ‘비즈니스 지니어스’)
그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10세
‘포크의 여왕’ 양희은은 1952년 8월 13일 태어났다. 음반 회사 페이퍼레코드 대표 최성철은 ‘청춘의 노래들’이라는 대중문화 분석서에서 그를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화룡점정”이라고 평가했다. 양희은은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연예 활동도 활발히 하면서 “넌 이름이 뭐니?”(잘 모르는 후배에게 한 말)라는 유행어도 남겼다.
그는 서울 가회동에서 태어나 재
최용신(1909.8.12~1935.1.23)은 소설가 심훈의 대표작 ‘상록수’의 모델이 된 일제강점기 농촌운동가다. 그는 “일제의 혹독한 탄압 아래서도 확고한 이념을 굽히지 않고 농촌에 뛰어들어가 아름답게 눈부신 젊은 한생을 살다 갔다.”(류달령 전 서울대 농대 교수 ‘최용신의 생애’)
그는 함남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출생했다. 두남리는 개신교 신자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대표이사는 일본 최고의 벤처기업가다. 1957년 8월 11일생이니 올해 59세. 일본 언론인 이타가키 에이켄(板垣英憲)은 ‘손정의 제곱 법칙’이라는 저서에서 이 법칙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손자병법’에서 엄선한 14개 문자에 손정의가 창조한 11개 문자를 조합해 25개 문자로 구성된 법칙이다. 손자의 ‘손’과 손정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1914.8.10~1998.12.17)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해 여성인권 신장에 기여한 사람이다. “차별받는 여성들의 영원한 어머니”(아동문학가 박정희 ‘이태영’)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평북 운산의 광산업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자 어려운 형편에도 혼자 딸과 아들을 모두 가르쳤다
‘아보가드로의 법칙’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물리·화학자 아메데오 아보가드로는 1776년 8월 9일 태어나 1856년 7월 9일 사망했다. 아보가드로 법칙은 기체의 종류가 달라도 온도와 압력이 동일하면 같은 부피 안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숫자는 같다(실제로는 이상 기체의 경우에만 성립)는 법칙이다. 그는 1811년 ‘단위입자의 상대적 질량 및 이들의 결합비를 결
물증은 없다. 다만 심증만 있을 뿐.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한 중국 정부가 ‘한류 제동 걸기’에 나섰다는 루머가 연예계를 강타하고 있다. 마침 중국 4개 도시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이준기의 영화 홍보 일정이 변경됐다는 소식과 함께 슈퍼주니어 김희철의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분 삭제 루머,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과
고려 초의 문신, 군인, 외교관 서희(徐熙·942~998.8.8)는 우리 역사상 최고 협상가로 통한다. 그는 “싸우지 않고 오로지 세 치 혀로 평화를 가져온 인물”(‘서희, 협상을 말하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로 정평이 나 있다.
내의령(현 국무총리)을 역임한 서필이 그의 아버지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경기도 이천의 토착 호족이었다. 960년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에서 모두 진멸 당하려 하도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 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을사늑약으
“천경자(1924.11.11~2015.8.6)는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한 두 남자와의 갈등과 여동생의 죽음으로 처절한 고난을 감내해야 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멋진 작품을 내놓았다.” 미술평론가 최광진의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천경자 평전)’ 중 일부이다.
그는 전남 고흥군에서 군 서기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남달랐던 그는 일본 도
“정약용(1762.8.5~1836.4.7) 한 사람에 대한 연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의 성쇠 존망에 대한 연구다.” 정인보(역사학자)가 말했던 정약용은 역사, 지리부터 과학까지 실로 방대한 분야에서 조선 최고의 학문적 업적을 이룬 천재 사상가다. 호는 다산(茶山).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탄생했다. 1776년 정조가 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