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8월 14일 엔초 페라리 속도의 대명사인 페라리 창립자

입력 2016-08-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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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엔초 페라리(1898.2.18~1988.8.14)는 창의력이 철철 넘쳐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무기로 광적인 성능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의 자동차는 속도와 매력, 성능과 동의어가 됐다. 특히 F1 그랑프리 경주에서 그의 자동차는 레이서들의 필수품이 됐다.”(비즈니스 전략가 피터 피스크 ‘비즈니스 지니어스’)

그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볼로냐에서 개최된 자동차 레이스를 보고 레이싱에 매료됐다. 13세 때 운전을 익히기 시작했고 16세에는 스포츠 신문에 축구 기사를 투고했다. 20세에 운수업체에 트럭 운전사로 취직했다.

트럭 운전을 하던 시절 그는 이탈리아 최고의 레이서 페리체 나지로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주선으로 스포츠카 제작업체인 CMN사로 직장을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운전 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에 데뷔하게 됐다. 1920년 알파로메오팀에 들어간 뒤 실력을 입증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유능한 엔지니어들과 함께 알파로메오 P1 차량을 개조한 P2을 만들어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명문인 피아트팀까지 꺾어 명성을 드높였다.

1929년에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마구간을 의미)라는 공장을 만들었다. 페라리 자동차 엠블럼에는 말 그림과 ‘SF’이라는 이니셜이 들어가 있는데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약자다. 1939년 자신을 ‘팽’하려는 알파로메오팀에서 나와 자신의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1940년에 첫 자동차 Tipo 815를 만들었다.

그리고 1947년에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진가를 그랑프리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팀’은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이나 우승하고 20여 개의 세계 타이틀을 차지했다. 마지막 역작인 페라리 F40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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