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갈등 해결 '시스템' 만들때

입력 2010-10-05 13:18 수정 2010-10-1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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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초일류 국가의 조건] 갈등, 전환의 길목에 서다 上

인생은 갈등이다. 흔히 인생을 출생과 죽음사이에 놓여있는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선택한다는 것은 갈등하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 진학할지 어떤 직장에 취업할지 어떤 이성과 결혼할지 어떤 집을 사야할지 등 인생은 수많은 갈등과 선택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는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내면에서 겪는 나 혼자만의 갈등과는 별도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형태의 집단 갈등은 우리 사회가 집단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인이 찾은 것은 개개인의 능력이었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국 사회가 중국식 가족주의의 영향으로 1차 집단에 대한 신뢰가 강하게 나타나 가족의 울타리 내에서는 신뢰가 높이 나타나는 반면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신뢰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아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신뢰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개개인의 능력은 근대적 시스템이 아닌 전근대적 혈연 지연 학연을 말한다.

오래된 자료지만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한국의 KBS 및 아시아 연구기금과 공동으로 1996년 서울 도쿄 북경의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다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조사에서 “혈연이 성공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서울 90%, 베이징 85%, 도쿄 70%였다.

“지연이 성공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서는 서울 80%, 베이징 52%, 도쿄 51%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학연이 성공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서울 91.6%, 도쿄 82.2%, 베이징 65.1%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혈연 지연 학연의 세 가지 질문에 모두 80% 이상의 ‘그렇다’라는 응답을 보여준 도시는 서울뿐이었다.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하고 사회적 시스템이 불신되는 사회는 집단갈등의 기형적인 구조를 낳았다. 그것은 집단 갈등이 문제의 해결이 아닌 문제 자체의 표현에 그치고 마는 현상이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대표 정상덕 교무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갈등을 해결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며 “시스템이 없다보니 논의가 한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갈등의 양상만 강화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집단 갈등 양상은 문제 해결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후쿠야마가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는 자신과 가까운 1차 집단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신뢰의 시스템이 제도에 근거한 신뢰가 아닌 평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과정에 근거한 신뢰와 한 개인이 속한 집단의 특성에 근거해 형성되는 귀속성에 근거한 신뢰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집단 갈등은 토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말하듯 집단 갈등은 ‘더 징징대며 울어서’ 정부나 언론, 대중의 관심을 끈 다음 ‘더 많은 대가’를 얻기 위해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더 많은 이들의 동정이나 관심을 얻는 것이 승리하는 결과로 귀착되고 만다.

갈등을 당연시한다는 것과 갈등이 반드시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즉 갈등은 사회통합적 효과도 있는 것이고 사회혁신적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따라서 갈등, 특히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억압보다는 갈등을 해결하는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제도적인 과정, 절차적인 정의를 세우는 법(기회의 공평성), 시혜적인 방식(기득권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방식), 의례적인 주기적인 갈등의 폭발을 통해 분노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방식 등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갈등을 줄이는 것은 아마도 세계관의 다양성, 일률적이지 않은 경제나 사회공동체의 인정이나 육성, 어느 정도의 탈상품화된 사회관계의 온존, 공동체 주의와 개인주의의 상호 보완 등을 통해 가능하다. 없다고 하기보다는 있다고 전제하고 해결하는 방안이 쉽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좌세훈 변호사는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뤄낸 히딩크 감독이 그동안 학연과 지연에 매몰됐던 팀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라며 “갈등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 구축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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