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부장 AI 호황에 날개...넘어야할 산은 더 높다

입력 2026-10-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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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반도체 및 장비 수출, 상반기 역대 최대 찍고 3분기 다시 최고치
주요국 중심의 공급망 내재화, 막대한 보조금 전쟁, 자국 우선주의 정책
국가별 반도체 전공정 장비 시장 점유율 미국과 일본 각각 41%, 23%...한국은 2.3%
핵심 노광·증착 장비와 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중국 기술 자립 정책도 위협 요인
일본 경쟁 및 협력 관계로...R&D를 핵심축으로 하는 전 주기 통합 패키지 정책도 필요

(출처=산업연구원 / AI 생성.)
(출처=산업연구원 / AI 생성.)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에 던진 과제는 '기술 자립'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AI 열풍으로 인한 반도체 호황에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이례적인 호황을 맞았다. 반도체와 제조용 장비 수출이 나란히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검사·계측장비와 첨단 소재, 반도체 설계자산(IP) 분야에서도 해외 진출이 이어진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열세를 극복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우위를 찾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다. 당장 반도체 첨단 장비와 소재에서 탄탄한 공급망을 역할을 하는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고, 동시에 협력할 지점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21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중소기업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8.8% 증가한 13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18개월 연속 증가세다. 반도체 품목엔 프로세스와 콘트롤러, 집적회로 및 개별소자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가 포함된다.

반도체제조용 장비 역시 11억400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38.3% 늘어난 수치다. AI 반도체 칩 제조 수요 급증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생산기지가 집중된 대만(29.4% 증가)과 싱가포르(113.9% 증가), 말레이시아(141.9% 증가)등에서 높은 증가율을 보인 영향이 컸다. 반도체 소자 제조 장비, 여과기, 청정기 등이 제조용 장비에 포함된다.

반도체와 반도체제조용 장비 두 품목 모두 역대 상반기 최대 실적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중소기업의 반도체 수출 증가는 AI 수요와 반도체 단가 상승, 해외 유통·후공정 거점으로의 물량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수출액 증가율을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점유율 상승으로 불 순 없지만 장비와 검사 분야에서도 수출이 늘었다는 점은 산업 저변 확대의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의 삼성전자 부스에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가 전시돼 있다. 2026.10.14 (연합뉴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의 삼성전자 부스에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가 전시돼 있다. 2026.10.14 (연합뉴스)

반도체는 AI,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핵심 기반으로 설계부터 생산, 패키징, 검사까지 기술력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주요국을 중심으로 공급망 내재화와 기술 안보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 전쟁과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2024년 6280억달러에서 2030년 1조2740억달러로 연평균 12.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시장도 같은 기간 18조8795억원에서 27조2389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소기업 전략기술로드맵(2026~2028) 보고서는 "반도체 산업은 AI 시대 도래와 글로벌 공급망 블록화에 따라 경제 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확대됐다"며 "초격차 메모리 기술 유지와 시스템 반도체, 소부장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특화 장비와 부품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부장 반도체 기업인 엘케이켐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13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0%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35.1% 늘어난 30억원을 기록했다. 박막 증착용 소재인 DIS 전구체의 공급 확대 등이 실적 개선으로 견인했다. 반도체 박막증착 소재는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얇은 막(박막)을 형성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이다. 반도체 칩 내부에 절연막이나 금속막 등을 원자 단위의 두께로 정밀하게 입히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다. 고유전율(High-k) 신규 제품군의 매출 비중 역시 키우고 있다. 엘케이켐은 전량 수입 중인 하프늄계 전구체의 핵심 원료의 국산화도 추진한다.

반도체 IP(설계자산) 분야 중소기업인 퀄리타스반도체는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IP를 고객사에 공급하고 사용료 받아 외형을 키워 왔다. 상반기 매출은 11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11.3%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매출 54억원의 두 배를 웃돈다. 전체 매출 중 70%를 수출이 차지한다. SK하이닉스와 3월 24억원, 4월 18억원 규모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고, 지난달엔 코아시아세미와 약 19억8000만원 규모의 반도체 IP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반도체 전 분야 검사장비를 개발·제조하는 테크윙의 올해 상반기 누적 매출은 109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835억원)에서 30% 확대됐다. 영업이익도 81억원에서 222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반도체 제조공정의 고도화와 적층단수 증가 등으로 기술적 난도가 높아지고, AI 반도체 용량과 처리 속도가 증가하면서 전체적인 테스트 시간과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8회 반도체대전'을 찾은 참관객들이 SK하이닉스 부스에서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 로고가 새겨진 반도체 웨이퍼를 둘러보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8회 반도체대전'을 찾은 참관객들이 SK하이닉스 부스에서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 로고가 새겨진 반도체 웨이퍼를 둘러보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기술 자립화와 글로벌 우위를 위해 경쟁력을 쌓고 있지만 과제는 산적하다.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2023~2024년 국가별 반도체 전공정 장비 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과 일본이 각각 41%, 23%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2.3%에 불과하다. 국내 메모리반도체 분야가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팹리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 수준에 그친다. 핵심 노광·증착 장비와 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고, 중소기업의 시제품 제작·검증 인프라와 전문인력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중국화 기술 자립화도 위협 요인이다. 중국은 주요국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과 비교하면 여전히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정부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을 무기로 경쟁력을 키울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중국이 5년 안에 반도체 소부장에서 기술 자립화가 이뤄지면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응해 첨단 패키징 장비, 고방열·고접합 소재, 반도체 검사·계측장비 등 기술개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특히 수율 향상과 핵심 부품 국산화, 팹리스 IP, 시제품 검증 역량 강화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달 1일 충남 아산시 하나마이크론 본사에서 열린 중견기업 업계 간담회 참석에 앞서 반도체 후공정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달 1일 충남 아산시 하나마이크론 본사에서 열린 중견기업 업계 간담회 참석에 앞서 반도체 후공정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부)

일본과의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산업연구원은 일본이 2022~2023년 반도체 장비 24개 품목 중 7개 품목에서 연 100만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16개 품목에선 전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 차지하는 강세를 보였다. 반도체 소재 분야도 비슷한 양상이다. 세계 시장에서 수출 점유율을 10% 이상 기록한 품목은 한국이 7개인 반면 일본은 19개로 격차가 크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는 "주요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약 50%에 이르고, 장비 시장 점유율 역시 약 30%로 세계 2위"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에선 입지가 좁아졌지만, 소재 장비 분야에선 한국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는 얘기다. 이에 한국과 일본이 인력 교류와 기술지원 등에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양국이 동시에 가진 기술적 약점에서 손을 잡아야 할 필요성에 무게가 실린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소부장을 키우기 위해선 정책적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당초 정부는 핵심 품목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기술 자립에 맞춰졌던 소부장 정책을 경제안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으로 확대했다. 2030년까지 경제안보 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고 공급망 위기 대응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국내 소부장 정책이 단기적 공급 안정과 추격형 국산화에 집중돼 기술 성과가 시장 확산이나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류성현 KDI 전문연구원은 "연구개발(R&D)이 배제된 정책 조합은 혁신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가 있어 개별 사업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R&D를 핵심축으로 하는 전 주기 통합 패키지로 가야 한다"며 "단순한 물리적 집적은 혁신 생태계 형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특화단지 정책 시엔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공동 R&D, 시험⋅인 증 인프라 공유, 전문인력 양성, 기술사업화 및 글로벌 공급망 진입 지원 등을 포함하는 정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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