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적층 단수 축소를 단순한 수요 감소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내 메모리 계층화가 본격화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17일 밝혔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HBM 단수는 12단에서 8단, 4단으로 낮아지는 방향이지만 사양 축소의 본질은 용량 축소에 가깝다”며 “대역폭 요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고, HBM의 부가가치는 코어다이에서 베이스다이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엔비디아가 차세대 제품에서 기존 12단 중심 HBM 구성을 8단까지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일부 AI 고객사에서는 4단 적층 구조까지 거론되면서 HBM 수요 둔화 우려가 커졌다. 삼성증권은 이를 메모리 역할의 분화로 해석했다. AI 모델이 단순히 크기를 키우는 방향에서 벗어나 필요한 연산을 선택적으로 수행하고 데이터를 반복 호출하는 구조로 발전하면서 모든 데이터를 HBM에 올려둘 필요가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GPU와 가장 가까운 HBM은 낮은 지연속도와 높은 대역폭을 담당하고,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데이터는 서버 D램(DRAM)과 소캠(SOCAMM), 장기 보관 데이터는 CMX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으로 분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HBM 디스펙에는 공급 부족 영향도 반영됐다고 봤다. 메모리 업체들이 디스펙 이후에도 2027년 HBM 수요 전망을 낮추지 않았고, 삼성증권은 2027년 HBM 가격이 2026년 대비 평균 50%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HBM 12단 대신 8단을 사용하더라도 2027년 총 구매 용량은 비슷할 전망”이라며 “AI 모델 기술 변화와 만성적인 HBM 쇼티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중요한 점은 용량이 줄어도 대역폭 요구는 오히려 강화된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HBM4E에서 핀당 최대 16기가비피에스(Gbps)를 구현했다고 밝혔고, 삼성전자도 14Gbps에서 향후 16Gbps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HBM 경쟁의 중심도 코어다이 적층 수에서 베이스다이의 로직과 인터페이스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가 핫칩스(Hot Chips) 2026에서 공개한 커스텀 HBM(Custom HBM)은 메모리 컨트롤러를 AI 반도체(XPU)에서 HBM 베이스다이로 옮기고 기존 물리계층(PHY)을 다이투다이(D2D) 인터페이스로 대체하는 구조다. 엔비디아의 NVHBM 역시 같은 방향이다.
삼성증권은 적층 수가 줄어 디램 용량이 감소하더라도 고성능 로직 베이스다이의 가치가 높아지면 HBM의 기가비트당 가격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고 봤다. HBM 용량 감소분이 서버 D램이나 SSD 등 다른 계층 수요로 이동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처럼 D램과 낸드를 모두 생산하는 종합 메모리 업체의 전체 시장 규모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메모리 계층 간 데이터 이동을 누가 통제하느냐와 인터페이스 표준화 여부는 변수로 꼽혔다. 현재 해당 영역의 주도권은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마벨 등 컨트롤러 업체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평가다. 이 연구원은 “HBM 디스펙은 메모리 중요도 하락이나 HBM 공급 과잉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단기적으로 메모리 업체에 중립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영역 확장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단수 증가가 제한되고 베이스다이가 고도화되는 변화는 비전도성접착필름(NCF) 방식의 수율 개선과 베이스다이 설계, 파운드리 이익 레버리지가 가능한 삼성전자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도”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