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출혈로 입원한 뒤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근로자가 회사 요청으로 조기 복직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양순주 부장판사)는 최근 A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의 남편 B 씨는 한 회사 총무팀 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뇌출혈로 입원했다. 퇴원 당시에는 시신경 손상으로 왼쪽 눈 시력이 절반가량만 회복됐고 혼자 걷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B 씨는 회사에 건강 문제로 복직이 어렵다고 밝혔지만 담당 직원 퇴사로 결산 일정이 촉박하다며 복직 요청을 받았다. 건강 회복에 최소 3개월이 필요하다고 재차 밝혔지만 회사는 결산 업무만이라도 맡아달라고 했다. 결국 퇴원 약 10주 만에 복직한 B 씨는 인력 충원 없이 결산뿐 아니라 총무팀 업무 전반을 맡았고, 이 같은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장에게 업무상 질책도 받았다.
이후 B 씨는 기존에 앓던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돼 입원했고, 혈변과 발작, 혼수상태 등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가 숨졌다. 사망진단서상 직접 사인은 자발성 뇌내출혈이었다.
이에 A 씨는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지급하지 않았다. A 씨는 불복해 소송을 냈다.

법원은 A 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업무상 스트레스가 B 씨의 기존 뇌출혈을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켰거나, 궤양성 대장염을 악화시켜 뇌출혈을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B 씨가 퇴원 후 약 12주간 경과 관찰이 필요했는데도 회사 요청에 따라 약 10주 만에 복직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회사 요청에 따라 부득이하게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 복직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복직 후에는 과중한 업무와 사장의 질책 등으로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기존 뇌출혈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B 씨는 뇌내출혈 등을 진단받고 약 4주간 경과 관찰과 안정가료(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가 필요하다는 치료 소견을 받았다”며 “B 씨가 호소한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는 치료 소견인 안정가료와 부합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궤양성 대장염으로 입원한 중에도 노트북으로 업무를 해 치료에 전념하지 못한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설령 스트레스와 궤양성 대장염 사이 인과관계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 않더라도 규범적 관점에서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재판부는 B 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