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만 내면 끝?…기업승계도 '가치평가·인수금융' 하나의 거래로 [CEO 고령화와 ‘승계절벽’ 현주소]

입력 2026-09-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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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중심서 M&A·지배구조·자금조달로 자문 확대
후계자 합의·기업가치·세 부담 괴리 등 승계 걸림돌
은행·증권·PE까지 참여하는 '승계금융' 생태계 필요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기업승계 시장의 풍경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상속·증여세를 얼마나 줄이고 주식을 어떻게 물려줄 지가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기업가치 평가부터 지분 정리, 자금조달, 지배구조 개편, 경영권 이전까지 하나의 거래로 접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한 세무 자문을 넘어 사실상 인수합병(M&A)에 가까운 종합적인 거래 구조를 짜야 승계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9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주요 회계법인들은 기업승계 관련 자문에서 세무 뿐 아니라 M&A와 재무·지배구조, 자산관리 등을 함께 검토하는 통합 자문을 확대 중이다.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관심사도 '세금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서 '승계 이후에도 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로 옮겨가는 추세다.

신상우 삼일PwC 헤리티지 센터장(파트너)은 "과거의 승계가 세금 중심이었다면 최근 승계는 기업의 영속성과 가문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설계하는 경영 전략의 영역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문 과정에서도 승계와 성장 전략을 함께 설계하거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장기적인 현금흐름 관리, 신탁·가족법인·패밀리오피스 등을 활용한 자산관리 체계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장기 승계 프로젝트…지분 이전 넘어 기업가치 키운다

승계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상속세 자체보다 사람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창업주는 승계를 원하지만 자녀가 경영 참여를 원하지 않거나 여러 자녀 사이에서 경영권과 지분 배분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한 제조업체 A사는 승계를 일회성 지분 이전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A사는 최근 국내 대형 회계법인을 자문사로 선정해 승계 작업에 착수했다. 창업주와 그의 배우자 지분이 80% 수준이지만, 그동안 자녀들에게 지분을 미리 이전하지 않아 향후 상속·증여 과정에서 세 부담과 지분 정리 문제가 한꺼번에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선제적인 승계 설계에 나선 것이다.

A사는 지분 이전만 서두르기보다 기업 자체의 성장과 현금창출력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막대한 현금창출력을 기반으로 M&A에 나서는 한편, 향후 승계를 염두에 둔 오너 일가의 지분 정리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가치를 키우고 자금 여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지분 구조를 정비하는 방식이다. 승계를 단순한 주식 이전이 아니라 기업가치와 자금조달, 지배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장기 거래로 접근한 사례다.

"주식은 많은데 현금이 없다"…승계금융이 성패 가른다

기업가치와 상속세 부담 사이의 괴리도 문제다. 기업가치는 수천억~수조원에 달하지만 오너 일가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서다. 주식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막대한 세 부담이 발생하면 후계자가 지분을 매입하거나 세금을 내기 위해 외부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 조달이 막히면 승계 계획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한원식 삼정KPMG 가업승계지원센터 리더(부대표)는 "중소·중견기업 오너의 자산은 상당 부분 회사 주식에 집중돼 있지만, 본인이나 후계자가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승계 방안이 없어서라기보다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을 납부할 현금이 부족하고, 이를 조달할 현실적인 수단이 제한돼 승계가 좌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승계 자문에서는 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는 데서 나아가 실제 납부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까지 함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한 부대표는 "외부 차입이나 인수금융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금융기관은 비상장주식의 담보가치와 처분 가능성, 후계자의 상환능력과 회사의 현금흐름을 고려해 대출 여부와 한도를 판단한다"며 "비상장주식은 시장가격과 환금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경영권과 결합된 주식을 처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담보로 인정되는 가치가 세법상 평가액보다 낮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내부 자금에만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후계자가 보유한 개인 재산만으로 세금을 내기 어려운 만큼 배당이나 회사 자산 처분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과도한 자금 유출은 승계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훼손하게 된다. 신 센터장은 "자금조달은 승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근본적인 승계 전략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세무·법률·지배구조 문제가 먼저 정리돼야 금융기관이나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을 활용한 다양한 금융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승계도 하나의 M&A처럼…자본시장 총망라

업계에서는 승계가 사실상 하나의 M&A 거래처럼 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후계자가 기존 오너의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기업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고, 지분 매입 규모에 따라 외부 금융기관의 자금조달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금융권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은행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구조화 금융과 지분담보대출, 신탁 기반 승계 솔루션 등을 확대할 수 있다. 증권사는 비상장주식 유동화와 메자닌, 기업공개(IPO) 연계 자금조달 등을 담당한다. PEF 운용사 역시 경영권 인수 뿐 아니라 소수지분 투자나 세컨더리 거래를 통해 후계자의 일시적인 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부대표는 "금융권의 역할은 단순히 세금을 낼 일회성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권과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승계가 완료될 때까지 장기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향후 승계금융은 은행 대출, 증권사의 구조화금융, 사모펀드의 지분투자 중 하나만 선택하기보다 기업의 현금흐름과 승계 단계에 따라 여러 수단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승계금융 시장이 성장하려면 세무와 금융을 별개의 영역으로 보는 접근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승계 대상 기업 상당수가 비상장사인 만큼 기업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금융자산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장 인프라가 필요하다. 비상장주식 신탁과 의결권 설계, 가족신탁 등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 센터장은 "오너들은 세무사, 변호사, 은행, 증권사를 각각 찾아다니기보다 원스톱 솔루션을 원한다"며 "향후 승계금융 시장은 회계법인·법무법인·금융회사·신탁사·PEF 운용사가 함께 참여하는 통합 생태계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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