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경영자 30%는 60세 이상
9% "자녀 미승계땐 폐업 고려"
상당수 구체적 후계 계획없어
까다로운 세제요건 리스크
높은 상속세 피하려 매각 추진
공제후 10년간 사업유지도 부담
사후기간 확대 승계 단절 부추겨

#수도권에서 수십 년간 자동차 부품 제조·공급업체를 운영해온 70대 A 씨는 최근 회사의 ‘다음 주인’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한 회사를 연 매출 250억~300억원대 알짜 기업으로 키웠지만 정작 자녀들은 가업을 이어받을 뜻이 없다. 회사는 잘 돌아가는데 뒤를 이어갈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 1세대의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지만 기업승계를 앞둔 중소기업 현장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A씨의 경우처럼 자녀가 기업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가족 밖에서 후계자를 찾을 시장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친족 승계를 택하더라도 복잡한 지분구조와 세제 요건, 장기간의 사후관리 의무 등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 수십 년간 기술과 거래망을 축적한 정상 기업이 ‘후계자가 없다’는 이유로 폐업이나 청산을 고민하는 실정이다.
6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기준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55세다. 60세 이상이 33.3%로 소상공인을 제외한 중소기업 경영자 3명 중 1명꼴이다.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 속도는 전체 인구보다 가파르다. 중기부의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중소기업 승계 활성화 기반 조성 방안’을 살펴보면 제조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60세 이상 비중은 2012년 14.1%에서 2023년 36.8%로 22.7%포인트(p)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인구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6.5%에서 27.2%로 10.7%p 늘었다.
문제는 은퇴 시점은 가까워지는데 승계 준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5년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에서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대표·임원과 후계자 600명 중 27.5%는 승계계획이 없거나(25.8%)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1.7%)고 답했다. 자녀에게 승계하지 못할 경우 폐업을 고려한다는 응답도 9.1%였다. 전문경영인 영입은 25.3%, 임직원 승계는 16.6%에 그쳤다.
현장에서는 이미 ‘회사는 남길 수 있지만 가족에게는 물려줄 수 없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의 특수 주방기기 제조업체 B사는 약 30년간 흑자를 이어온 알짜기업이다. 창업자 작고 이후 회사 매각을 추진하면서 기술보증기금의 기업승계 종합컨설팅 지원도 받았다. 현재 매수 희망자 2곳과 조건을 협의 중이지만 기업가치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로 가격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B사는 매각이 최종 성사되지 않으면 계속 경영하는 방안과 함께 사업 종료와 법인 청산까지 고려 중이다.
비슷한 사례는 전국에서 확인된다. 호남권에서 20년간 사업을 이어온 제조기업은 A 씨처럼 자녀들이 각자의 진로를 정하면서 가족 승계가 어려워졌다. 동남권에서 33년간 사업을 해온 제조기업은 자녀들이 별도 생업에 종사하는 데다 추가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 경기권에서 15년째 사업 중인 제조기업 역시 대표자 고령화와 가족 구성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외부 승계가 검토해야 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다. 모두 15~33년 업력의 장수 제조기업들이지만 사실상 가족승계가 어려워 친족 밖에서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특히 실태조사를 보면 가족 승계자 중 기업승계를 희망하지 않았거나 고민하는 이유로 ‘중소기업 경영 환경 열악’이 54.4%로 가장 높다.
가족이 승계를 원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세제와 사후관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승계 과정에서 막히는 기업도 적지 않다. 수도권에 있는 한 공조기기 제조기업 대표는 자녀에게 승계하던 중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기존 제조업이 주업종이었으나 해외 기업과의 협력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과정에서 수입품 판매 매출이 2년간 제조업 매출을 추월하면서 ‘주된 업종’을 10년 이상 계속 영위해야 하는 요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부기업 등 높은 세 부담도 여전히 기업승계의 주요 변수다. 공제 후 10년간 기존 사업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번 세제 개편에서 피상속인의 경영기간 요건을 1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고, 상속 이후 사후관리 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등 요건은 더 강화했다.
김희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업상속공제나 증여세 과세특례는 자녀 승계를 전제로 설계돼 경영진 인수나 종업원 인수, 제3자 매각처럼 기업과 일자리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로에는 혜택이 닿지 않았다”며 “다만 세제만으로 충분할지는 지켜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한국가업승계협회장(박사)은 “후계자 부재와 창업자 고령화, 지분 구조 문제, 가족 간 합의, 사후 관리 리스크, M&A 시장 미성숙 등의 문제가 많은 데도 가업 승계 논의가 상속세나 증여세에 너무 집중돼 있다”면서 “대한민국 중소·중견기업이 계속성, 고용 유지, 기술 전승, 거래처 생태계 지속 등 지역 경제 안정을 위해 지속 가능성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