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속도전·노사 갈등 최소화가 '성패' 좌우

정부가 공공기관 109곳을 줄이는 대대적인 기능개혁에 나선 것은 단순한 조직 군살빼기를 넘어 AI 대전환과 에너지 안보,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공공부문의 역할과 운영체계를 다시 짜겠다는 의미다. 기관별로 기능을 세분화하고 늘려온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유사·중복 기능을 통합해 국가 차원의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3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그동안 공공기관은 2007년 298개에서 올해 342개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역과 부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무분별한 기관 유치 경쟁으로 인해 외연 중심의 팽창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임직원 정원은 2010년 24만7000명에서 2025년 43만2000명으로 급증했고, 인건비 예산 역시 2020년 29조6000억원에서 2025년 37조7000억원으로 확대됐다. 특히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무리한 국책사업 추진 등이 맞물리면서 공공기관 부채는 2020년 542조원에서 2025년 769조원으로 팽창했다. 이는 국가 재정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저출생·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늘어 정부의 재정 여력이 축소되는 가운데 유사·중복 기관의 분산 운영에 따른 중복 관리 비용 발생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발전, 항만, 에너지, 주택, 철도 등 국가 인프라를 담당하는 대형 기관의 유사·중복 기능을 일원화해 규모의 경제와 대외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2001년 전력산업 경쟁 도입을 위해 5개사로 분할됐던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발전 5사는 개별 투자로 인한 역량 분산과 비효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5년 만에 가칭 '한국발전'으로 단일 법인화된다.
이와 관련해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본사 소재지는 아직 논의 중이며, 이번 발표는 공공기관 기능개혁의 대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향후 통합 과정에서 필요하면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와 노동조합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통합 방향은 정해진 만큼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관련 논의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합해 국가 차원의 통합적 에너지 전략을 수립하고, 4개 항만공사를 하나로 합쳐 지역항만 간 과당경쟁을 막고 글로벌 물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석유·가스공사 통합 시 가스공사의 재무구조 악화 우려에 대해 허 차관은 "두 기관의 재무구조 차이와 통합에 따른 우려를 정부도 잘 알고 있다"며 "두 기관 모두 에너지 공급과 관련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재무구조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면서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신속성과 재무성과가 필요한 '개발' 기능과 공공성이 중시되는 '주거복지' 기능이 혼재돼 주택 공급 속도가 저하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능과 조직을 두 개로 분리하여 효율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이러한 청사진이 실질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꼼꼼한 사후 관리와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대한석탄공사 청산 및 대규모 기관 통폐합 등 굵직한 구조개혁에는 관련 법률의 신속한 제·개정이 수반돼야 하는 만큼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 및 협조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무엇보다 100여 개가 넘는 기관이 감축·재편되는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고용 불안과 노사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에 정부는 임원을 제외한 통폐합 기관 직원의 고용 승계를 확실히 보장하고, 기관 통폐합 전후로 직원의 처우가 저하되지 않도록 보수체계를 운영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향후 성공적인 개혁 완수를 위해서는 노정협의체를 중심으로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지속해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는 세밀한 국정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