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책 안 통했다…카니, 트럼프에 강경 대응 선회 [미·캐나다 관세전쟁]

입력 2026-08-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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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AFP연합뉴스)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잇단 양보와 유화책을 펴온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미국의 50% 관세 공세에 결국 정면 대응으로 돌아섰다. 수출의 약 70%를 미국에 의존하는 캐나다로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승부수다. 그럼에도 카니가 강경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거듭된 압박에 쌓일 대로 쌓인 캐나다 국민의 반감과 ‘더는 양보하지 말라’는 여론이 자리 잡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ㆍ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는 무역 합의에 근접한 듯했으나 전날 밤 막판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미국은 이날 0시를 기해 유제품과 맥주·와인 등 주류, 하키장비, 기계, 섬유, 시멘트, 가구, 낚싯대 등 약 200억달러(약 28조원) 규모의 캐나다산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카니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50% 관세에 대한 보복 조치로 내달 8일부터 미국산 철강·전자제품·유제품·농기계·펄프·제지 등을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캐나다 정부는 향후 며칠 안에 구체적인 대응 조치를 공개할 예정이다.

카니 총리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캐나다는 자국 노동자와 농민ㆍ가정ㆍ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새로운 관세에 달러 대 달러(동일한 규모)로 똑같이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캐나다가 무역전쟁에 돌입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공격을 받으며 전쟁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우리는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품과 서비스 교역액이 거의 9000억달러에 달했던 양국 사이에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무역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막판에 뒤집힌 협상…자동차·주권 문제서 끝내 충돌

캐나다 측에 따르면 양국이 협상 문턱서 결렬된 이유는 미국이 막바지에 추가 요구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카니 총리는 “미국은 경제적으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며, 캐나다의 국익을 해치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면서 “합의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측의 요구는 지나치게 과도했고, 양보는 지나치게 불충분했다”고 토로했다.

양국의 최대 쟁점은 자동차 관련 관세를 어떻게 처리할지였던 것이라고 전해졌다. 캐나다는 승용차 차량에 제한된 우대 관세 조건을 중형·대형 트럭까지 확대하기를 원했지만 미국은 이에 반대했다. 더군다나 미국 자동차 대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캐나다에서 픽업트럭 생산을 위한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카니 총리는 미국 측 입장을 따를 경우 포드의 F-350·F-450·F-550 트럭과 제너럴모터스(GM)의 실버라도 등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차종이 우대 대상에서 제외돼 캐나다 내 생산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은 또한 캐나다가 다른 국가들과 체결하는 무역협정에 제한을 두려 했으며, 문화 및 프랑스어 관련 사안에서도 캐나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했다고 카니 총리는 밝혔다.

그간 카니 정부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경제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어 왔다. 지난해에는 무역협정을 포함해 총 20건의 경제·안보 협정을 세계 각국과 체결했다.

이에 이러한 미국 측의 요구는 캐나다가 추진하는 무역·경제 관계의 다극화 움직임을 저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카니 총리는 “우리는 여러 면에서 세계 각국이 선택하는 파트너지만, 미국은 이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니 총리는 이번 긴장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관련 협상에도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짚었다. USMCA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협정 갱신을 거부한 뒤 아직 정식 협상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트럼프 달래던 카니, 결국 돌아섰다

카니 총리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대캐나다 공세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치를 내세워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해야 한다’, ‘캐나다는 미국 없이 생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쥐스탱 트뤼도 당시 총리를 ‘주지사’라고 조롱하자, 이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메시지가 주효했다.

하지만 집권 후 행보는 달랐다. 캐나다와 영국에서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카니는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경제 다변화를 추진하는 한편, 최대 교역국인 미국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실용 노선을 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면충돌보다는 타협을 모색하며 대미 관계에서 상당한 유화책을 펼쳐왔다.

전임자인 트뤼도 총리가 부과했던 보복관세를 철회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을 샀던 디지털서비스세를 폐지했으며,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를 연결하는 교량을 개통하기 위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를 다시 조정해주기까지 했다.

블룸버그는 “그러나 카니의 이러한 유화적 전략도 무역 합의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서 “이에 카니 총리는 트뤼도 전 총리가 취했던 방식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와 금액 기준으로 동일한 규모가 되도록 대규모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돌아갔다”고 풀이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앰배서더 브리지 인근 75번 주간고속도로에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앰배서더 브리지 인근 75번 주간고속도로에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수출 70% 美에 달렸는데…카니의 위험한 승부수

카니 총리의 맞대응은 상당한 경제적·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승부수다. 캐나다는 수출의 70%가량을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 원유 ·자동차·자동차 부품 등이 대표적인 수출 품목이다. 미국의 대캐나다 무역적자는 주로 앨버타주에서 공급되는 막대한 규모의 원유 수입에서 비롯된다.

캐나다 내 강경한 대미 여론도 카니 총리가 맞대응에 나설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캐나다 최대 인구 지역인 온타리오주의 더그 포드 주총리는 카니 총리의 ‘달러 대 달러’ 보복 조치에 힘을 실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주 카니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석유·가스·전력 등 캐나다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이날 공개하기도 했다.

카니 총리의 대응은 캐나다 국민들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주 발표된 레제마케팅의 캐나다인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가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더 이상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이 조사에서 캐나다가 미국에 판매하는 에너지에 수출세를 부과하거나 넷플릭스와 같은 미국 서비스에 특별세를 매기는 방안에 대해서도 지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캐나다 미국 대사의 퇴출 요구 청원에 17만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정적도 카니 편에…대미 강경 대응 ‘초당적 지지’

캐나다 제1야당인 보수당의 피에르 폴리에브르 대표도 성명에서 “캐나다 국민은 우리의 일자리와 기업을 겨냥한 이러한 불공정한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카니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의 정치적 경쟁자이자 앨버타주 전 주지사인 제이슨 케니도 협상에서 물러나기로 한 카니 총리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케니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 “캐나다는 분명 더 큰 안정성과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지하고 선의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공정하고 균형 잡힌 합의를 찾을 준비가 여전히 돼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경제적·정치적 공격 앞에서 비굴하게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게재했다.

블룸버그는 “많은 캐나다인은 앞으로도 나름의 방식으로 미국에 보복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부 선출직 정치인들도 이를 독려하고 있다. 미국 여행을 피하고 미국산 제품을 불매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캐나다인의 미국 여행은 급격하게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접경주와 라스베이거스 같은 관광지가 타격을 입고 있다.

‘관세 맞불’ 양국에 모두 부메랑 우려

군사·경제·지리적으로 긴밀하게 얽힌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가 흔들릴 경우 양국 모두 상당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캐나다는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데다, 제조업체 상당수가 미국산 부품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와의 깊은 경제 통합으로 함께 이익을 누려온 미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는 지적도 많다. 카니 총리는 이날 “캐나다는 미국이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99%, 전력의 85%, 원유의 60%를 공급하며 미국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면서 “나는 그들이 우리가 이러한 공급을 중단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양국 국민들이 그렇지 않아도 이미 높은 물가로 시름 하는 가운데 두 동맹의 치고받기식 무역 싸움은 소비자들과 기업들에 새로운 골칫거리를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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