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AI 시대 다시 필요한 굴뚝들

입력 2026-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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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재원들을 만날 때마다 뜻밖의 공통점이 자주 눈에 띈다. 변압기를 만드는 전력기기 회사도, 철강사도, 조선사도 새 먹거리로 AI 데이터센터를 이야기한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AI 특수가 전통 제조업 깊숙이 파고든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전력기기 3사가 쌓아둔 일감만 36조원이 넘는다. 현대제철은 데이터센터용 철강재의 패키지 공급을 위한 전담 조직을 꾸렸고, 포스코는 미래수요개발실을 신설해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관련 수요 발굴에 나섰다.

조선업계는 수십 년간 갈고닦은 선박용 엔진 기술을 데이터센터 발전설비로 확장하고, 해상플랜트 기술을 활용해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띄우는 구상까지 내놓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반도체 패키징 소재와 전력 케이블 절연재 등 AI 인프라와 맞닿은 고부가 소재에서 새 수요를 기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조업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공장과 굴뚝은 낡은 것처럼 취급됐다. 산업의 무게중심은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전통 제조업의 시대는 저물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AI 열풍이 만들어낸 풍경은 조금 다르다. 화면 속 생성형 AI를 움직이는 건 결국 발전소와 변압기 같은 무거운 산업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이들 산업에서 제조 경쟁력을 쌓아왔다. AI 시대가 한국의 중후장대 산업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운동장을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가장 앞선 반도체를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그 반도체를 24시간 돌릴 산업 기반까지 갖췄느냐에서 갈릴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호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AI 투자 열기가 꺾이거나 공급이 수요를 앞서면 지금의 증설이 다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특수를 좇는 속도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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