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선 배율 축소·신용거래 제한·단계적 퇴출 제안
김용범 상폐 선 그었지만 이 대통령 추가 대응 주문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직접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대표가 공개적으로 투자 중단을 권고했다. 금융당국이 기본예탁금 상향 등 보완책을 내놨지만 거래 열기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정치권과 시장에서도 추가적인 투자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2배 상품의 성과를 분석한 글을 올리고 “지금이라도 투자를 멈추길 바란다”고 밝혔다. 해당 게시물은 이후 삭제됐다. 배 대표는 국내 ETF 시장을 개척해 ‘ETF 아버지’로 불린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ACE 삼성전자단일종목레버리지’와 ‘ACE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를 운용하고 있다. 자사 상품의 위험성을 운용사 수장이 직접 경고한 만큼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배 대표가 제시한 분석에 따르면 상장일인 5월 2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SK하이닉스 주가는 17.9% 하락했지만 이를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은 47.5% 떨어졌다. 기초자산 하락률을 단순히 두 배 적용한 손실률 35.8%보다 11.7%포인트 더 컸다.
주가가 하락할 때 수익을 내도록 설계된 인버스 2배 상품도 같은 기간 31.1% 손실을 냈다. 이론적으로는 수익이 나야 하지만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손실이 누적됐다. 레버리지 상품이 일정 기간의 누적 수익률이 아니라 하루 수익률의 배수를 추종하면서 발생하는 ‘음의 복리’ 효과다.
배 대표는 운용사가 취할 수 있는 투자자 보호 조치가 제한적이라며 최후의 수단으로 상장폐지 가능성도 거론했다. 다만 현행 규정상 운용사가 임의로 상품을 상장폐지하기는 어렵다.
금융당국은 상장폐지보다 신규 자금 유입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과열을 낮추는 보완책을 내놨다. 다음 달부터 개인투자자의 기본예탁금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이고 현금만 예탁금으로 인정한다. 매매수량 단위는 현행 1좌에서 20좌로 확대하고 사전교육도 3시간으로 늘린다. 신규 상품 상장도 잠정 중단했다.
그러나 보완책 발표 이후에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16종의 거래대금은 하루 12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기본예탁금과 매매 단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투기 수요와 변동성을 낮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곧바로 후속 조치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최근 발표된 보완책을 두고 “그것 가지고 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며 “신속하게 필요한 대응 조치를 과감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학계에서도 △지수 추종 배율 축소 △신용거래 제한 △단계적 퇴출 제안 등 후속 대안이 거론된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우리 주식시장, 이대로 괜찮은가’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미 거래가 활발한 상품을 한꺼번에 폐지하기는 쉽지 않다”며 “두 배인 추종 배율을 1.2배 등으로 단계적으로 낮추고 예탁금 1억원 상향 등 진입 장벽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레버리지 상품을 현금으로만 거래하도록 하고 신용·미수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투자자 교육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상품 규제를 강화할 경우 투자 수요가 해외 레버리지 상품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보다 강한 대책을 요구했다. 정 대표는 “즉시 상폐는 여러 문제가 있어 쉽지 않다면 폐지 계획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며 “우선 30분 단일가 매매를 시행하고 신용·미수 거래를 즉각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기존 상품의 상장폐지에는 선을 그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9일 라디오에 출연해 상장폐지 주장에 대해 “상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관련 상품 규모가 이미 1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상장폐지 자체가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