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 - 상속] 부동산 팔면 유언도 사라질까

입력 2026-07-18 07: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내 집은 장남에게 더 많이 물려준다.”

한 아버지가 자필 유언장을 남겼다. 여러 자녀 중 특정 자녀가 오랫동안 부모를 돌본 사정을 고려해 법정상속분과 다른 비율로 부동산을 상속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진행되면서 아버지는 생전에 그 부동산을 조합에 매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상속이 개시되자 예상치 못한 분쟁이 시작됐다. 한쪽은 “유언은 그대로 살아 있으므로 매매대금도 유언에서 정한 비율대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쪽은 “유언의 대상인 부동산을 이미 팔았으니 유언은 철회된 것이고, 결국 매매대금은 법정상속분대로 나누어야 한다”고 맞섰다. 법원은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언 목적물인 부동산을 생전에 처분한 이상 유언과 저촉되는 생전행위에 해당하므로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민법은 유언 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그 저촉되는 범위에서 유언이 철회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목적물이 처분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유언자가 정말 유언을 철회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이다.

대법원은 “부동산을 처분했다고 해서 곧바로 유언이 철회되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처분대금이 원래의 부동산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대상재산이고, 유언자가 그 처분대금에도 유언의 효력을 미치게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 유언은 여전히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사건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망인은 애초부터 법정상속분과 다른 비율로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려는 명확한 의사를 유언장에 남겼다. 부동산이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편입될 가능성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부동산을 매도한 당시 망인은 췌장암 말기로 사망을 불과 19일 앞두고 있었고, 매매대금을 자신의 생활비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는 사정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동산이 매매대금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상속인들에게는 여전히 유언에서 정한 비율대로 귀속시키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번 판결이 의미 있는 이유는 유언을 해석하는 기준을 형식에서 실질로 옮겼다는 데 있다. 유언장은 법률문서이지만, 결국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뜻을 남기는 수단이다. 따라서 유언의 효력을 판단할 때에도 단순히 목적물이 존재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유언자가 무엇을 실현하려 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상속법이 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그동안은 유언 목적물이 처분되면 유언도 함께 효력을 잃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법은 형식보다 의사를 존중한다. 부동산이라는 ‘물건’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재산을 누구에게 얼마나 남기려는 ‘뜻’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언의 목적은 특정한 물건 자체보다 재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재산은 현금이 되기도 하고 다른 자산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언자의 의사까지 함께 바뀌었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앞으로 모든 사건에서 매매대금에도 유언의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언자의 의사, 처분 경위, 처분대금의 사용 여부, 새로운 유언의 존재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번 판결은 상속법이 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대상이 단순한 재산 자체가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 의사라는 점을 다시 확인해 준 사례이기도 하다. 형식보다 실질, 재산의 형태보다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를 중시하는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상속 실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단일종목 레버리지 문턱 상향…예탁금 3000만원 올리고 20좌씩 거래
  • 메리츠금융, 홈플러스에 DIP 금융 2000억 지원⋯“회생 마중물 되길”
  • 참치에 햇반까지 줄인상…하반기 먹거리 물가 부담 커진다
  • 휘발유 바닥 난 러시아, 인도에 공급 요청
  • 대만 TSMC 2Q 순이익 전년比 77% 급증⋯분기 기준 사상 최대
  • 윤호중 행안장관, 경찰 비리 ‘발본색원’ 나선다⋯"순환인사 전면 도입"
  • 신현송 한은 총재 "기준금리 인상이 주가에 악재? 전혀 동의 안해"
  • '통일교 1억 수수' 권성동, 대법 '징역 2년' 확정판결로 의원직 상실
  • 오늘의 상승종목

  • 07.1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286,000
    • +0.2%
    • 이더리움
    • 2,709,000
    • -1.42%
    • 비트코인 캐시
    • 323,400
    • -0.74%
    • 리플
    • 1,605
    • +0.12%
    • 솔라나
    • 110,600
    • -0.18%
    • 에이다
    • 244
    • +3.39%
    • 트론
    • 477
    • +0.21%
    • 스텔라루멘
    • 273
    • -0.73%
    • 비트코인에스브이
    • 19,670
    • +3.15%
    • 체인링크
    • 12,160
    • -1.22%
    • 샌드박스
    • 70.54
    • +0.0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