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와 인력·시설·특허 공유…업계 변화 불가피
투자자 보호 강화…책임 경영에도 긍정적 영향

정부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업공개(IPO)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자회사를 상장하려면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뿐 아니라 영업·경영 독립성까지 입증해야 하는 만큼 사업별 자회사를 통한 성장 전략도 이전보다 까다로운 심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최근 중복상장을 ‘원칙 금지·예외 허용’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한 거래소 규정 개정안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기존에는 물적분할 자회사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 상장 심사 기준이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중복상장 기업에 대한 별도 특례 심사가 이뤄진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제도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업종으로 꼽힌다. 신약개발 기업들은 파이프라인이나 플랫폼 기술, 위탁개발생산(CDMO), AI 등 사업별로 별도 법인을 설립한 뒤 투자 유치와 IPO를 추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구개발 단계부터 사업을 세분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이 활용돼 온 만큼 상장 문턱이 높아질 경우 기업들의 성장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자회사의 독립성을 엄격하게 검증한다는 점이다. 거래소는 자회사가 자체 연구개발 역량과 사업모델을 보유하고 있는지, 주요 경영 의사결정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지 등을 평가한다.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특허, 핵심 인력을 모회사와 공유하는 사례가 많은 바이오 기업으로서는 기존보다 상장 준비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요소가 늘어난 셈이다.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것만으로는 상장 필요성과 독립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업계에서는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 기조에 맞춰 기업 구조를 재편하는 움직임이 있다. 일동제약은 신약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휴온스는 휴온스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하며 연구개발과 사업 운영을 일원화했다. 또 휴온스글로벌은 자회사인 휴온스와 휴온스랩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자회사 상장 계획을 수정한 사례도 있다. 알테오젠은 당초 자회사 알테오젠바이오로직스의 상장을 추진했지만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회사의 책임도 강화된다. 앞으로 모회사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일반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주주 보호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후 주주와 소통하거나 필요하면 주주 동의를 확인한 뒤 최종적으로 자회사 상장에 대한 찬반을 의결하고 관련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이 과정은 독립적인 특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물적분할 자회사는 주주 동의가 필수 요건으로 적용된다.
이번 제도가 자회사 상장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장 필요성과 주주 보호를 함께 검증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으로 본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중복상장 규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다. 성과가 좋은 사업만 분리 상장하면 기존 상장회사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만큼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A회사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는데 핵심 사업을 떼어내 B회사로 상장하면 기존 주주가 손해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우려가 줄면 투자자 신뢰가 높아지고 투자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 중심의 바이오산업 특성상 기존처럼 사업을 분리한 뒤 IPO를 추진하는 전략은 점차 줄고 초기부터 독립적인 연구개발과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모회사와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