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권위주의에 억압받는 시민들

입력 2026-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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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시’, 알리 아스가리 & 알리레자 하타미 공동 감독, 2023년>

2023년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이듬해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이 영화는 이란에서 권위주의 체제에 억압받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는 없고 9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도 구조가 단순하다.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별다른 액션 없이 한 사람이 정면에서 카메라 뒤의 사람, 행정 관리나 선생 등과 대화하는 형태다. 단순하지만 상당히 재미있다. 블랙 코미디라 할 수 있다. 첫 네 에피소드를 간략히 소개한다.

한 젊은 남자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관청에 왔다. 그는 아이 이름을 ‘데이비드’라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라서다. 그러나 관리는 이란 이름이 아니라며 허락하지 않는다. 자식의 이름을 정하는 데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이란식 이름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닐 테다. 있다면 남자가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관리는 그냥 못마땅했고, 거절할 권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헤드폰을 쓰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거울을 보고 있는 설정이다). 옷 가게 안이다. 화면 밖에서 어머니와 가게 주인이 아이가 학교 행사에서 입어야 할 옷에 관해 얘기한다. 어머니의 부름에 아이가 화면 밖으로 나갔다 올 때마다 몸이 무채색의 의복으로 덮인다. 아이는 왜 입어야 하냐고 묻는다. 결국 거의 눈만 남는다. 분홍색 헤드폰과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는 다 가려졌다.

10대 여학생이 교장에게 불려 왔다. 남자애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는 걸 청소부가 보았단다. 학생은 강하게 부정한다. “그는 눈이 매우 나빠요, 어떻게 날 알아볼 수 있어요?” “학교에 여학생이 500명이나 있어요.” 여교장은 그가 걸음걸이로 알아봤단다(학생에 대한 부적절한 관심이었을 수 있다). 교장이 아버지에게 전화한다고 하자 결국 학생은 실토한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그 남자애랑 수요일에 공원에 갔었는데 선생님을 봤어요, 혼자가 아니었어요.” “촬영도 했어요.” 교장이 부정하자 학생은 “그럼, 아빠에게 전화하세요” 그러면서 앉은 자리에서 다리를 꼰다. 이런 통쾌함은 그러나 이 에피소드가 유일하다.

젊은 여자가 차 안에서 히잡을 하지 않았다고 조사받는다. CCTV에 촬영된 것이다. 여자는 운전자가 자기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 묻는다, “내가 히잡을 안 했다고 쳐요. 어쨌든 차 안은 사적 공간 아닌가요?” 관리는 대꾸한다, “차 안이 사적 공간이라고 누가 그래요? 안이 보이면 아니에요.”

이 영화는 허가를 받지 못한 건 물론이고 제작자를 구하지 못해 감독들이 자비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작 기간은 단 7일. 이런 말을 들으면 영화가 좀 허술할 거라고 예상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균일하게 좋다. 각 에피소드가 평균 7분 정도 되는데 컷이 없어서 연기가 쉽지 않다. 촬영은 7일이라도 사전에 연습을 많이 했을 것이다.

권위주의에 대한 고발이라는 공통 주제를 갖고 있어서 반복적인 면은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겐 각 장면이 뻔하지 않았다. 흥미진진하다고 해도 별로 과장이 아니다. 어떤 평자는 스릴러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인물들이 무조건 착한 건 아니라는 (거짓말도 하니까)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황당한 상황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이 단선적이 아니라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운전면허 받으러 왔는데 몸의 문신이 문제가 되는 (둘이 서로 무슨 상관인가!) 남자의 장면이 특히 그렇다. 앞서 얘기한 여학생이 교장 앞에서 다리를 꼬는 장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제목 ‘지상의 시’는 이란의 여성주의 시인 포르흐 파로허저드(1934~1967)의 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 동명의 시는 상당히 긴데,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곤 / 태양이 차가워졌고 / 대지에서 축복이 떠났고 / 사막에서 풀들이 시들었고 / 바다에서 물고기가 말랐고 / 땅은, 이제, 죽은 자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란을 천상의 시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지상의 시’는 그것에 대비시킨 것일 수 있다. 어쨌든 영화에 비해 시가 너무 암울하다. 영화 제작 중에 이란의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이 (2022년) 일어났던 모양인데, 그럼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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