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멸실 서류상 추정치보다 8만 가구 많아"
"다가구주택, 1가구 허물면 평균 5가구 사라져"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극심한 전월세난과 세입자 주거불안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집을 새로 짓는 속도보다 기존 주택을 부수는 속도가 더 빨라 도심의 저렴한 전월셋방이 대거 사라진다는 것이다.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규모 정비사업의 문제점과 지속가능한 주거환경 대안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단순한 공급 확대 수치 뒤에 가려진 '주택 순감(純減)의 역설'을 지적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서울시가 공표한 '2031년까지 31만 가구 착공' 계획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나 지자체는 서류상 '22만 가구'가 철거(멸실)된다고 보지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파괴력은 이보다 훨씬 크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유는 서류와 실제 거주 형태가 다른 '다가구주택'에 있다. 다가구주택은 등기부등본상 집주인이 1명이어서 통계에는 '1가구'로만 잡힌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건물에 평균 5가구가 독립적으로 세 들어 산다. 이 책임연구원이 서울시 정비사업 통계와 서울연구원의 저층 주거지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니 철거 대상 22만 가구 중 약 2만 2000가구가 이 같은 다가구주택이었다. 서류상으로는 2만 2000가구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5배인 11만 가구의 세입자가 한꺼번에 길거리로 밀려나는 셈이다. 여기에 아파트나 연립주택 철거 물량(19만 8000가구)을 더하면 향후 서울에서만 30만 8000가구에 달하는 저렴한 주거지가 사라지게 된다.
반면 새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는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 책임연구원이 올해 3월 기준 서울시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 통계를 전수 분석한 결과 공급 계획이 수립된 주택정비형 재개발 구역(143곳) 중 23.3%인 34곳은 '새로 짓는 집'이 '부수는 집'보다 적었다. 예를 들어 용산구 한남3구역은 8373가구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지만, 정작 공급 계획은 5970가구에 불과해 도리어 2403가구가 줄어든다.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1415가구)과 동작구 노량진1구역(-905가구)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민층의 둥지를 부수고 고가 아파트를 대단지로 지으면서 정작 도심 주택 총량은 감소하는 것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집값 및 전월세가 상승 문제의 해법으로 주택공급을 제기했지만,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공급은 도시의 저렴 주택이 철거되어 아파트로 변하면서, 집값 및 전월세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우려는 과거 '뉴타운 광풍' 시절 이미 증명된 바 있다는 게 이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오세훈 시장의 과거 임기 중이던 2008년 서울시가 만든 '주거환경 개선정책 자문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당시 자문위가 재개발 전후 동네를 조사해 보니 매매가 5억원 미만 주택 비율은 86%에서 30%로 급감했고, 서민들이 주로 찾던 '전세 4000만원 미만' 주택은 83%에서 0%가 됐다. 반면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필요한 월 소득은 기존 거주민 평균의 3배가 넘는 607만원에 달했다. 무분별한 전면 철거가 대규모 이주 수요를 유발해 주변 전셋값을 폭등시켰고, 돈 없는 원주민들은 쫓겨나듯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원주민 축출 현상'이 확인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서울의 전세 시장 체력이 이미 바닥나 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둘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22.5까지 치솟았다. 극심한 전세난을 겪었던 2021년 2월 셋째 주(122.8) 이후 약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집을 구하려는 사람(수요)에 비해 매물(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가격도 폭등세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4.42%를 기록했다.
이처럼 전셋집 품귀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수십만 가구의 '철거·이주 폭탄'까지 한꺼번에 터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전월세 대란이 올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이날 토론회에서는 단순한 물량 공세에서 벗어나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이 책임연구원은 서울을 5대 권역별로 나누어 이주 시기와 착공 물량을 쪼개는 '순환개발 방식'과 공공이 주도해 세입자 이주 대책을 책임지는 구조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시기 조정만 해도 전월세난 없는 정비사업은 가능하다"며 권역별로 권역 내 착공 순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직속의 가칭 '광역순환정비 총괄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수도권 전체의 정비사업 순서를 지휘하고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시스템 구축 방안을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