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기관의 전산 관리 오류로 10차례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시민에게 법원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600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다만 최근 3차례 선거에 대해서만 배상을 인정하고 나머지 7차례 청구는 소멸시효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시효 적용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70단독 박재민 판사는 지난해 5월 A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위자료 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은 2009년 수원지검 공무원이 형 집행이 종료된 A 씨의 수형인명표를 폐기하지 않고 수형인명부 해당란을 삭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그 결과 A 씨는 이후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등 총 10차례 선거에서 투표하지 못했다.
법원은 제20대 대통령선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3차례 선거에 대해서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상 과실로 원고가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선거 한 차례당 200만원씩 총 600만원의 위자료를 산정했다.
반면 2018년 6월 이전에 치러진 제18·19대 대통령선거, 제19·20대 국회의원선거, 제5·6·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7차례 청구분은 국가재정법상 5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되며 권리의 존재나 행사 가능성을 몰랐다는 사정만으로는 시효 진행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A 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가의 행정 오류로 발생한 기본권 침해 사건에까지 일반적인 소멸시효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선거권 침해 원인이 전적으로 국가의 행정 착오에 있었고, 당사자 역시 장기간 그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는 점에서다.
이보라 정오의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소멸시효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이고 국가배상 사건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면서도 “국가가 시효 완성을 내세워 상당 부분의 책임을 면하는 모습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하는 국가의 책무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고 평가했다.
특히 해당 판결은 최근 6·3 지방선거 당시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와 맞물려 선거 행정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선거의 공정성이 개표 과정뿐 아니라 유권자의 투표권 보장에서도 출발한다는 점에서 선거인명부와 국가 전산망 관리 체계의 신뢰성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단순 손해배상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행정 착오로 인해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되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한다.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그 안정성이 국민의 기본권 위에 세워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