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국민의 일상에 스미는 말(馬) 교감 치유농업

입력 2026-05-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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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고향 제주의 푸른 초원에는 늘 말이 있었다. 기억은 선명하지 않지만 어머니께서는 내가 갓 짜낸 말 우유를 마시며 건강하게 자랐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셨다. 집 마당 한편에서 힘차게 숨을 고르던 말은 내게 낯선 동물이 아니었다. 삶 가까이에서 사람을 돕고 가족의 생계를 지탱해 주던 든든한 동반자였다.

말의 선한 눈동자를 마주하던 제주의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그 기억은 오늘날 농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에도 중요한 바탕이 됐다.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을 넘어 국민의 삶을 건강하게 지탱하는 기반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영화 ‘호스 위스퍼러’에는 상처 입은 소녀와 말이 서로의 고통을 보듬으며 회복해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영화적 상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움직임과 긴장, 감정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동물이다. 사람이 조급하면 말도 예민해지고, 사람이 호흡을 가다듬으면 말도 천천히 마음을 연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몸의 균형과 마음의 안정을 함께 회복한다.

그동안 농업은 국민의 밥상을 책임지며 몸의 에너지를 공급해 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하는 마음의 에너지까지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치유농업이 지향하는 새로운 역할이다.

말을 통한 치유와 여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말산업정보포털 호스피아에 따르면 국내 정기 승마 인구는 7만4050명, 체험 승마 인구는 55만1067명에 이른다. 승마 시설도 전국 473개소로 집계된다. 이제 말과 교감하는 경험을 일부의 특별한 활동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국민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생활 속 치유 서비스로 넓혀 가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그동안 축적해 온 치유농업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말 활용 치유 서비스의 외연을 넓히고자 한다. 단순한 승마 체험을 넘어 말과의 교감 활동에 원예 등 치유농업 자원을 결합한 복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다. 아동·청소년, 노인 등 생애주기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모델도 마련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치유농업 서비스로 발전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인프라와 전문성이 중요하다. 지난 4월 24일 농진청과 한국마사회가 체결한 업무협약은 그 첫걸음이다. 양 기관은 말 교감 치유 프로그램 개발과 현장 확산, 승용마 실증·조련과 보급 확대, 국산 열풍건초 생산·유통 기반 구축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농진청은 연구와 기술 개발을 맡고, 마사회는 현장 실증과 보급, 홍보 기반을 뒷받침하게 된다.

말산업의 기반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말을 키우는 농가가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어야 치유 서비스도 지속될 수 있다. 특히 사료비 부담은 말 사육 농가의 큰 과제다. 농진청은 수입 건초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조사료 공급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산 열풍 건초 생산 기술의 고도화와 활용성 검증에도 힘쓸 계획이다. 이는 농가의 경영비를 줄이고 말의 건강을 지키며 말산업의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다.

농촌은 더 이상 먹거리 생산만의 공간이 아니다. 국민이 쉬고 배우고 회복하는 생활 속 복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말과 교감하는 치유농업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길이다. 농업이 국민의 몸을 먹여 왔다면 이제는 마음을 돌보는 역할까지 넓혀야 한다.

제주의 말들이 어린 소년에게 건넸던 따뜻한 위로가 이제 치유농업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일상에 닿기를 바란다. 말의 선한 눈동자와 힘찬 발걸음이 국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문화를 잇는 매개가 되도록, 농진청은 현장과 함께 그 길을 차근차근 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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