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과 효율 사이, 환자는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26-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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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필수·공공의료 중심의 의료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고령화와 의료 수요 증가 속에서 보건의료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개혁이 궁극적으로 환자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환자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의료개혁의 속도와 방향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특히 희귀난치질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첫 번째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시스템’이다. 인공지능, 로봇, 데이터 기반 기술은 의료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를 수용하는 인허가와 보험급여 체계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제로 누리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조금 더 유연하고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환자의 통증, 활동량, 기능 상태 등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행정 시스템과 연동한다면, 환자가 반복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존엄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효율성과 혁신의 긴장 관계’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의료는 점점 효율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혁신적인 치료는 높은 비용을 수반하며,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지속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혁신의료는 종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희귀난치질환 영역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치료비가 높고 치료가 새로운 방식이거나 희소하기 때문에 보험 적용이 제한되거나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은 질병이 악화된 이후의 치료보다, 초기 단계에서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한다.

예를 들어 척수자극기나 약물펌프 치료는 일정 수준 이상의 통증에 도달해야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이는 사실상 환자에게 ‘더 악화된 이후에 치료를 받으라’는 신호로 작용한다. 그러나 임상적으로나 삶의 질 측면에서나, 조기 치료가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비마약성 진통제(지코노타이드)와 같은 대안적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비용 부담은 크지만, 중독 위험이 낮고 통증 조절 효과가 우수한 치료 옵션은 장기적으로 개인과 사회 모두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단기적인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인 가치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이러한 판단에는 경제성 평가와 재정적 고려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일상과 사회로 복귀했을 때 발생하는 가치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의료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연결된 투자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소통’이다. 과거 통증 치료 과정에서 마약성 진통제 처방 문제로 의료진이 제약을 받았던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 환자 간의 소통을 통해 처방 자율성이 확대되었고, 이는 의료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 경험은 제도 개선이 반드시 거창한 변화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신뢰는 책임을 동반한다. 환자와 의료인 역시 자율성에 걸맞은 자정 노력과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그 신뢰에 응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도 필요하다. 형식적인 대표성과 균형에 치우친 기존의 위원회 구조는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실제 질병과 치료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 그리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환자의 참여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 이는 의사결정의 정당성뿐 아니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의료개혁은 특정 주체만의 과제가 아니다. 정부의 결단, 의료계의 전문성, 그리고 환자의 책임 있는 참여가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비용효과성과 우선순위라는 어려운 문제 역시 어느 한쪽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다.

지난 수년간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제도의 문제 이전에, 그 근저에는 상호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사회적 자본, 즉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 그 방향을 함께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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