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룸 붕괴·설비 손상 현실화…AI 메모리 슈퍼사이클 기회 상실 우려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강행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조업 차질을 넘어 대한민국 핵심 산업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산업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특히 생산시설 점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피해는 일시적인 생산 감소에 그치지 않고, 정밀 설비의 치명적 손상과 글로벌 공급망의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회사는 16일 수원지방법원에 노조의 불법 파업을 금지해 달라는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노조가 생산라인 등 주요시설을 점거할 경우 경영상의 큰 손실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삼성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는 사측과의 임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다음 달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가동을 전제로 설계된 초정밀 공정이다. 단 몇 분의 정지로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2018년 평택 공장 정전 당시 28분 가동 중단으로 약 5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를 환산하면 시간당 약 1071억원, 하루 기준 약 2조6000억원 수준이다. 분당 손실액만 10억원을 웃돈다. 2019년 화성 사업장도 1분가량 정전으로 수십억원 피해를 입었다. 2021년 미국 오스틴 공장은 한파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며 정상화까지 한 달 가까이 소요됐고 최종 손실 규모는 약 5500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사례를 감안하면 노조가 예고한 장기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노조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규모가 하루 약 1조원, 전체적으로 20조~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단순 손실을 넘어 ‘골든타임’ 상실이다. 삼성전자는 HBM4 등 차세대 메모리 양산을 앞두고 인공지능(AI) 메모리 경쟁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한 상황에서 생산 차질은 곧 기회비용으로 직결된다. 지난해 연구개발비 37조7000억원을 투입한 대규모 선행 투자 회수 시점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시기를 놓치면 중장기 시장 지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시설 점거가 현실화될 경우 피해 양상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된다. 반도체 공정의 핵심인 클린룸 환경이 붕괴되면 공정 중이던 웨이퍼는 전량 폐기될 수밖에 없다. 설비 손상도 치명적이다. 반도체 장비는 비정상 정지 시 내부 공정 환경이 무너져 복구에만 수주일에서 수개월이 소요된다. 세정 설비의 경우 강산·강염기 약액에 노출된 공정용 마스크가 손상될 경우 제작에만 한 달 이상이 필요하다.
배관 문제도 변수다. 약액과 가스를 공급하는 배관이 굳으면 전면 교체가 불가피하며 이는 사실상 신규 설비 설치와 맞먹는 작업이다. 양산 재개까지 수주 이상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환경 복구 역시 즉각 이뤄지지 않는다. 항온·항습 조건이 무너지면 이를 정상화하는 데 최소 2~3일이 필요하다. 이후에도 이물질 제거와 테스트 웨이퍼 검증 과정을 거쳐야 정상 가동이 가능하다. 공정 중 웨이퍼 처리도 문제다. 설비 내부에 남은 웨이퍼를 적시에 반출하지 못하면 공정 한계 시간 초과로 전량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생산 차질을 더욱 확대하는 요인이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뿌리’인 반도체 산업이 흔들릴 수도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3월 반도체 수출은 328억3000만달러로 사상 처음 300억달러를 돌파하며 전체 수출의 38.1%를 차지했다. 1년 전 22.5% 대비 비중이 급등하며 경제 의존도가 심화된 상황이다. 최근 수출 증가분의 70% 이상이 반도체에서 발생할 정도로 성장 동력이 집중된 가운데 삼성전자 생산 차질은 곧바로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수출이 10% 줄면 국내총생산(GDP)이 약 0.8% 하락하고 파업 피해액 10조원 발생 시 최대 2조5000억 원 규모의 세수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시설 점거가 단순한 쟁의 수준을 넘어선다고 보고 있다. 생산 중단을 넘어 설비 자체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노사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장은 버튼을 누르면 바로 다시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다”며 “비정상 정지 한 번으로 수주일 이상의 셧다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핵심 산업 시설에서의 점거 행위는 산업 경쟁력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 노사 갈등을 넘어 공급망과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사전 대응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