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양가·대출 규제에…"분양시장, 가격 영향력 더 커졌다"

입력 2026-03-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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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27만 명 몰릴 때 분당·용인은 미계약 속출
10·15 대책 후 대출 문턱에 '수익성'이 곧 흥행

▲영등포자이디그니티 투시도 (GS건설)
▲영등포자이디그니티 투시도 (GS건설)

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 시장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 입지나 브랜드만 좋으면 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선당후곰(먼저 당첨된 후 고민한다)'은 이제 옛말이다. 고분양가 기조 속에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철저하게 자금 동원력을 계산하고 시세 대비 확실한 '안전 마진'이 보장된 곳에만 베팅하는 '선자후청(先 자금계획 後 청약)' 기조가 강해지는 모습이다.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무순위 청약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6일 진행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자이 디그니티' 무순위 청약은 3가구 모집에 무려 27만573명이 신청했다. 특히 전용면적 84㎡ B형 1가구에는 6만 9609명이 몰렸다. 이 주택형의 분양가는 11억7770만원으로 인근 입주권 실거래가(약 20억3000만원) 대비 약 9억원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 요인으로 풀이된다. 경기 의왕시 '의왕 더샵 캐슬' 역시 전용 113㎡ 1가구 무순위 청약에 452명이 몰렸는데, 무주택 다자녀 가구로 자격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음에도 시세 대비 5억~6억원 저렴한 분양가가 수요자를 움직였다.

반면 상급지로 통하는 분당과 용인에서는 '고분양가'에 발목을 잡힌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더샵분당센트로'는 최근 무순위 청약에서 평균 1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나 앞선 1순위(51대 1)에 비해 열기가 크게 꺾였다. 이 단지 전용 84㎡ 분양가는 최고 21억 8000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6억원 이상 비싸게 책정됐다. 용인 '수지자이에디시온' 역시 고분양가 여파로 당첨자들의 이탈이 이어지며 최근 2차 무순위 청약까지 진행되는 등 '미계약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무순위 청약은 일반분양 당첨자 계약 이후 계약 포기나 당첨 부적격으로 주인을 찾지 못한 가구에 대해 청약받아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는 것을 말한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100% 추첨제로 선정해 이른바 '줍줍'이라 불린다.

무순위 청약 성적표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배경은 고분양가 속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다. 지난해 발표된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청약 당첨 시 자금 조달의 난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과거에는 계약금 20%만 있으면 중도금 대출과 잔금 납부 시 주택담보대출(LTV 70%)을 통해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규제 지역의 중도금 대출 한도는 40%로 줄어들었다. 분양가가 10억원이라면 최소 4억원(계약금 20%+중도금 대출 외 20%)의 현금을 중간에 직접 조달해야 한다.

잔금 단계는 더 가혹하다. LTV 한도가 40%로 축소된 데다 시세별 주택담보대출 상한액이 엄격히 제한된다. 시가 25억원 초과 주택의 경우 대출 한도가 2억원에 불과해 고가 아파트 당첨 시 분양가의 80% 이상을 현금으로 보유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6개월 내 전입 의무' 규정까지 더해져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이른바 '갭투자식 청약'도 사실상 차단됐다.

전문가들은 한동안 가격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원래도 가격은 청약의 핵심이지만, 지금은 주택 가격 조정기인 데다 시장 상승 폭이 예전보다 상당 부분 축소된 측면이 있어 가격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며 "가격 상승기에는 분양가가 높더라도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수에 나섰지만, 지금은 그런 시장 환경이 아니다 보니 (분양가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대출이 과거처럼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라 분양가가 너무 비싸거나 시세 차익 기대감이 떨어지면, 수요자들이 안전 마진을 고려해 청약에 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결국 시세 차익과 분양가의 적정성, 그리고 수분양자가 직접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허들이 얼마나 높은지 등에 따라 청약 시장은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입지와 브랜드의 가치가 다시 부각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美 IAU 교수)은 "지금은 시장 조정기라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격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본다면 결국 (청약의) 핵심은 입지와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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