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물류·주거·R&D 결합된 '도시첨단물류단지'
교통 인프라 혁신 및 AI 특구 연계 기대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에서 내려 경부고속도로 양재IC 방향으로 30분 남짓 걷다 보면 서울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는 사뭇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대로 맞은편 대형 마트들의 활기찬 모습과 달리 이곳은 노란색 '안전제일' 표지판과 낡은 모델하우스들만이 남아 적막감을 자아낸다.
한때 전국을 누비던 화물차들의 거점이었던 이곳은 현재 '양재 현주차장'이라는 이름으로 승용차와 고속버스의 임시 거처가 됐다. 부지 내 서초구 분리수거 매립지는 이미 이전했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쿠팡 물류센터도 퇴거를 앞두고 있다. 부지 현장에서 만난 쿠팡 관계자는 "원래 작년 말까지 부지를 쓰기로 했으나 올해 3월까지로 연장된 것으로 안다"며 "정확한 이주 시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림그룹이 2016년 해당 부지(8만 6003㎡)를 4525억원에 매입한 지 10년 만에 양재 화물터미널 복합개발의 시계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2024년 2월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사업' 계획안을 승인 고시하고, 2025년 8월 변경 승인까지 마무리하면서 최종 관문인 건축허가만을 남겨두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승인 이후 인허가를 위한 건축 심의 절차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첨단 물류와 도시 기능이 결합된 '수직적 복합개발(Compact City)'이다. 전체 용적률 약 800%, 건폐율 약 60%가 적용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단순한 건축을 넘어선 도시 재창조를 지향한다. 단지는 지하 8층에서 지상 최고 58층 규모의 건물 8개 동으로 구성된다. 지하 하부 공간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접목된 최첨단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 국내 최대 규모로 구축된다. 지상부에는 공동주택 4개 동(998가구)과 오피스텔·업무시설 3개 동(972실), 숙박시설 1개 동이 유기적으로 배치돼 주거와 업무, 상업이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초고층 타운을 형성할 예정이다.
특히 업무시설과 숙박시설을 잇는 50층(180m) 높이의 '스카이브리지'는 이번 개발의 백미로 꼽힌다. 이곳에 인피니티풀과 전망대, 옥상 조경 휴게시설 등을 조성해 서울 남부권을 한눈에 조망하는 신규 관광 명소이자 지역의 랜드마크로 각인시킨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동력인 교통 인프라도 상전벽해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이 착공을 눈앞에 두며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양재IC에서 한남IC 구간이 지하로 내려가고 지상부에 대형 상부 공원이 조성되면 지난 수십 년간 도로로 단절됐던 서초의 동서 지역이 보행으로 연결되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하드웨어의 변화를 완성하는 실무적 동력은 하림그룹이 부담하는 5607억원 규모의 공공기여금이다. 기여금은 사업 본격화에 따른 교통 정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신분당선 '만남의광장역'(가칭) 신설과 신양재IC 신설 등 대중교통 및 도로 접근성을 확충하는 데 집중 투입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 신설 시 향후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는 직접적인 초역세권 수혜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양재역을 통과하는 GTX-C 노선이 개통되면 수도권 전역으로의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기존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과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등이 갖춘 사통팔달의 이점에 광역 교통망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이번 개발은 서초구가 추진 중인 '양재 AI 미래융합특구'와 맞물려 거대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AI 기업 1000개 유치' 비전에 따라 단지 내 R&D 공간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거점이 된다. 인근 양재·우면동 일대의 AI 혁신 거점과 2만 가구 규모의 주거 타운으로 변모할 서리풀 지구 개발이 퍼즐처럼 맞물리면서 이 일대는 글로벌 AI 산업의 메카로 거듭날 전망이다.
인근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주민 전 모 씨(74세, 여성)는 "양재역을 기점으로 KT 연구개발센터와 LG화학, 그리고 최근 재건축 논의가 한창인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인근까지 거대한 '스마트 벨트'가 형성된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과천 주암지구 등 주변 배후 도시 개발까지 맞물려 이 일대가 개발된다면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할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양재동 주민 박 모 씨(60세, 남성)는 "오랫동안 개발된다는 소문만 무성해 주민들의 피로감이 컸다"며 "워낙 입지가 좋은 땅인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개발되어 정체된 지역 상권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고 했다.

총사업비 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 조달은 마지막 관문이다. 하림그룹은 자기자본 2조3000억원 외에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와 분양 수익으로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보적인 입지적 강점 덕분에 사업성 자체는 긍정적이나, 경직된 부동산 PF 시장 환경 속에서 거액의 자금을 적기에 조달하고 미분양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 지역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부지 자체는 누구나 탐내는 독보적인 노른자 땅이지만, 그 가치에 걸맞은 복합 단지를 실제 구현해낼 수 있는 하림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자금 동원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단순한 건설을 넘어 어떤 우량 기업과 대형 유통사를 입점시키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릴 것인 만큼 하림이 지닌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운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하드웨어 구축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본지 자문위원인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는 "양재 화물터미널 부지는 개발 압력이 매우 높은 곳인 만큼 체계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며 "주택 공급에 걸맞은 학교 등 기초 인프라 확충은 물론, 교통 혼잡 완화 대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단순히 건물을 짓고 분양하는 데서 끝나는 기존 개발 방식을 넘어 일본의 '롯폰기 힐즈' 사례처럼 준공 후에도 운영·관리와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집중해야 한다"며 "상업시설 공실 문제를 방지하고 지역 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새로운 개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