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사과 재배로 유명한 농업도시 아오모리는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밀어붙이면서 풍경이 달라졌다. 세계 3대 프로브 카드 제조사 MJC와 실리콘카바이드(SiC) 제조사 후지전기가 이곳에 생산 거점을 두며, 인공지능(AI) 메모리와 전력반도체 핵심 부품을 만드는 반도체 도시로 변모했다.
그런 아오모리가 최근 4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을 맞았다. 공장은 멈췄고, AI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부품 공급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자연재해 하나로 글로벌 테크 산업의 공급망이 흔들리는 장면이 다시 연출됐다.
반도체 강국 대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27일 대만 이란현 해역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27년 만의 최대 규모 지진이었다. 신주와 주난 지역에 위치한 파운드리 업체 PSMC는 8인치와 12인치 팹 모두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는 큰 피해를 피했다는 소식에 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불안함은 여전하다.
이 두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지진과 해일 위험이 낮고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용인 역시 자연재해 측면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속한다. 잘 돌아가던 반도체 팹이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멈춰설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반도체 국에 축복 수준이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없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진짜 불안 요인은 따로 있다. 전력난이다. 특히 여름 중 폭염이 시작되고 전력 수요가 치솟는 순간,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이 불안정해지기 일쑤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전기를 먹고 자라는 산업이다. 첨단산업의 전력 의존도는 다른 산업 대비 8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확산과 함께 반도체 중요성이 커질수록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 된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을 비롯해 팹리스, 소부장 기업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2050년까지 이곳에서 필요한 전력만 12기가와트(GW)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전력 수요는 이렇게 빠르게 늘어나는데 송전망 확충 속도는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지연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갈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다.
AI 수요가 폭발하는 지금같은 시기에 반도체 팹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손님을 맞이할 식당에서 정작 수도가 끊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진도 없고 폭설도 없는 나라에서 전력이 부족해 반도체 공장이 멈춘다면 그건 재난이 아니라 관리 실패다.
자연은 통제할 수 없지만 전력은 준비할 수 있다. 반도체 경쟁력의 다음 시험대는 공정 미세화도 패키징 기술도 아닌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