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실적은 사상 최대인데…금융권은 왜 숨을 죽였나

입력 2026-02-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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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4대 금융지주의 실적 시즌이 시작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축포를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의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합계는 약 18조 원으로 추정된다. 역대 최대 규모다.

개별 실적도 눈에 띈다. KB금융은 순이익 6조 원 고지에 바짝 다가섰고, 신한금융은 처음으로 ‘5조 클럽’ 진입이 유력하다. 30일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하나금융은 지난해 연간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4조29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4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금융 역시 전년 대비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금융지주 임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이익이 늘수록 설명해야 할 말이 더 많아진다”고 털어놓는다. 최대 실적이 곧장 최대 부담으로 돌아오는 풍경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은 금융사를 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 왔다. 이익이 나면 ‘이자 장사’, 금리가 오르면 ‘폭리’, 대출을 조이면 ‘민생 외면’이라는 프레임이 반복됐다. 위기 국면에서는 공적자금 논리가, 호황 국면에서는 사회적 책임론이 앞섰다. 금융은 늘 정책의 완충지대이자 희생양이었다.

최근 들어 압박의 결은 더 날카로워졌다. 지배구조가 전면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 관행을 두고 “부패한 이너서클”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회장 연임 관행, 사외이사 구성, 성과보수 체계까지 한꺼번에 수술대에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2~3년마다 지배구조 개혁이 반복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다른 대기업 집단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의 특별사법경찰 인지수사권 부여 논의까지 겹치면서 체감 압박은 한층 커졌다. 금융사의 의사결정이 더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이 지배구조 개선이나 불공정 행위 차단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독과 수사의 경계가 흐려질 경우, 금융사는 리스크 관리보다 ‘리스크 회피’에 몰두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 은행 임원은 “리스크를 줄이려면 장기 전략이 필요한데, 지배구조가 늘 흔들리면 단기 대응밖에 할 수 없다”며 “결국 보신 경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금융사 의사결정 테이블에서는 전략 검토보다 ‘이게 정부 시그널과 맞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는 하소연도 적지 않다.

물론 금융의 공공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금자 보호와 금융 안정, 시스템 리스크 관리까지 금융은 본질적으로 규제 산업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계다. 금융 역시 엄연한 상장 기업이며 국내외 수많은 주주의 자산이다. 무조건적인 압박과 인위적인 인적 쇄신이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산업이 아니다. 금융의 본질은 흔히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이다. 경제의 혈맥으로서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수익을 창출한다. 은행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야만 위기 국면에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고 국가 신인도를 떠받칠 수 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하거나 관치의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익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의심받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봐야 할 대상’이 된다면 장기 경쟁력은 자라기 어렵다.

대한민국 금융이 가야 할 길은 ‘압박’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이다. 금융사들이 ‘실적 축포’를 마음 편히 쏘아 올릴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 수익이 다시 우리 경제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 선순환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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