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과대학 정원 확대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교육을 받는 의과대학 학생들이 증원에 따른 후폭풍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강의실과 실습실·교원 등 기본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학생 수만 급증하며 의대 교육의 질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현장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과 한국의학교육학회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II’ 공동 세미나를 열고 현재 의료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날 채희복 충북대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교수는 “현재 의대 교육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정책 실패의 부담이 대학과 학생, 그리고 현장을 지키는 교수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대 의대는 지난 10여 년간 단계적 증원 필요성을 지속해 제기해 왔다. 채 교수는 “우리는 교육 여건 개선과 수련 인프라 확충을 전제로 한 요청했었다”면서 “충북대는 2005~2016년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를 거쳐 2017년 의예과 체제로 복귀했지만, 지역 정착이라는 정책 목표는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다. 의전원 체제 당시에도 졸업생 상당수가 서울 대형병원으로 이동했다. 단순 의대 증원만으로 지방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충북대의 경우 의대 정원이 49명이었다. 24학번은 49명이었지만, 25학번은 124명으로 증가했다. 두 학번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는 만큼 사실상 ‘더블링’을 넘어선 상황이 됐다. 정원 확대에 맞춰 신규 건물 신축과 해부학 실습동 이전 계획이 추진됐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집행이 보류됐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강의실, 해부실 시설 과밀 문제, 졸업 후 교육 등 수련기회 보장 등에 대해 우려가 큰 상황이다.
박훈기 한국의학교육학회 회장(한양대 의과대학 학장)은 “24·25학번 더블링 교육을 실제로 운영하면서 실무적 한계를 매일 체감하고 있다”며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박 회장은 “서울 소재 의대도 더블링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지방 의대는 트리플링을 넘긴 곳도 있다”며 “49명을 가르치던 대학에서 150~200명을 교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참여형 수업과 실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의대 교육은 피드백을 줘야 하는데, 현 상황에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습할 공간과 인력, 시간이 모두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원 급증은 성적 평가와 행정 시스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합반 수업을 하더라도 성적을 다르게 매길 수 없어 학생들은 학번 분리 석차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산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지만 준비는 미흡하다.
졸업 이후 진로 불안도 커지고 있다. 박 회장은 “24학번 졸업 시 약 3300명이 국가고시를 보지만, 이후에는 7000명 이상이 국시와 인턴 과정을 거치게 된다”며 “인턴 정원을 그만큼 늘릴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아직 답이 없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이번 상황을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의학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붕괴로 인식하고 있다. 24학번 의대생 대표인 김동균 군은 “3000여 명 기준으로 설계된 교육 시스템에 6000명 이상이 들어온 상황“이라며 ”150~200명 합반, 책상도 없는 닭장식 강의실, 타 단과대 강의실을 전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공간은 확보됐을지 몰라도 교육이 가능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학교가 많다”고 피력했다.
예과 단계 실험·실습이 영상으로 대체되거나 축소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김 군은 “카데바 6구로 120명이 실습하거나 10~20명씩 묶여 실습하는 학교도 있다”며 “교육의 밀도와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000명 증원의 여파로 이미 1년 반 이상 몸살을 앓고 있는데, 앞으로 이 혼란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약 6000명의 24·25학번 재학생이 동시에 교육을 받고 있고, 일부는 휴학이나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며 “추가 증원이 이뤄질 경우 또다시 더 많은 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김 회장은 “우리의 예상보다 논의 과정, 검정 절차가 없다”며 “현재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4차 회의까지 진행됐고, 오늘 5차 회의가 진행되는데 어떠한 결론이 도출될지 예상되는 정도다. 이 사안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의학교육 현장의 운영 현실을 하나하나 점검하지 않으면 같은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