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재 없는 생필품 전반 조사…국세청, 17곳 세무조사 착수
‘물가 안정’ 세무조사 3차…범칙 혐의 땐 형사처벌까지 병행

대체재가 사실상 없는 생필품 가격이 오르는 이면에서 가격 왜곡과 탈세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국세청 판단이 나왔다. 가격 담합과 허위 원가 계상, 특수관계 거래를 통해 생활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생필품 관련 업체들이 대거 세무조사 대상에 올랐다. ‘안 살 수도 없는 품목’이라는 점을 이용한 구조적 가격 인상과 탈세를 동시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국세청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불공정행위로 생활물가 상승을 주도하며 서민 부담을 가중시킨 생필품 관련 탈세 혐의 업체 17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들 업체의 탈루 혐의 금액이 약 40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 대상 17곳 가운데 대기업 2곳, 중견기업 2곳, 중소기업 13곳이 포함됐다. 국세청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생필품 가격 왜곡과 탈세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조사 배경에 대해 “생활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며 생필품 가격 인상이 서민 부담을 키우는 가운데, 일부 제조·유통업체들이 독·과점 지위 남용이나 담합으로 가격을 올리고, 거짓 매입과 특수관계법인 거래를 통해 원가를 부풀려 세 부담을 회피해 온 정황이 확인됐다”며 “대체재가 없는 생활필수품의 비정상적 가격 상승을 차단하고 시장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조사 유형별로는 △가격 담합 등 독·과점 기업 5곳 △거짓 매입과 허위 비용 계상으로 원가를 부풀린 제조·유통업체 6곳 △복잡한 거래구조를 통해 유통비용을 인위적으로 높인 업체 6곳이다. 국세청은 특정 품목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대체재가 부족해 가격 인상이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생필품 전반을 조사 범위로 설정했다.
먼저 가격 담합 사례를 보면 해당 식품 첨가물 제조 대기업은 담합 관계에 있는 회사들끼리 원재료를 교차 구매해 매입단가를 부풀린 뒤, 이를 근거로 제품 가격을 인상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실제 이익은 협력수수료나 위장계열사를 통해 이전돼 법인 이익이 축소 신고되는 수법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원가 부풀리기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해당 위생용품 제조업체는 특수관계법인에 과도한 판매장려금을 지급한 것처럼 회계 처리해 원가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정황이 포착됐다. 이 업체는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300억 원 이상을 비용으로 계상했고, 그 결과 500억 원 이상 이익이 특수관계법인으로 이전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국세청은 이 같은 원가 왜곡이 최종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생리대는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기 쉬운 대표적 예시다. 대체재가 제한적인 품목일수록 원가 부풀리기를 통한 가격 인상이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전가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이익이 정상적으로 과세되지 않을 경우 생활물가 상승과 조세 형평성 훼손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가공거래·부당지원 사례로는 유아용 화장품 제조업체가 제시됐다. 이 업체는 상표권 가공거래와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부당 지원을 통해 소득을 축소 신고한 정황이 확인됐다. 실제 사업과 무관한 거래를 설정해 비용을 늘리고, 그 이익을 사주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로 이전한 구조다.

유통 왜곡 사례에서는 수산물 도매업체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해당 업체는 특수관계법인을 유통 과정에 여러 단계로 배치해 거래 가격을 단계별로 끌어올리고, 그 차익을 계열사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유통비용을 인위적으로 높인 정황이 확인됐다. 조업경비로 위장한 자금이 국외로 송금된 뒤 개인 용도로 사용된 사례도 점검 대상이다.
이번 조사는 국세청이 추진 중인 ‘물가 안정’ 세무조사 3차다. 앞서 생활물가 밀접 업종과 시장 교란행위를 겨냥한 조사에 이어, 이번에는 소비자가 선택을 회피하기 어려운 생필품 분야에 조사 역량을 집중했다. 범칙 혐의가 확인될 경우 형사처벌도 병행할 방침이다.
안 국장은 “이번 조사는 단순한 세금 추징이 아니라, 불공정행위로 생활물가를 끌어올린 구조 자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이 안 살 수도 없는 생필품에서 가격 왜곡과 탈세가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를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