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담합한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이 수백억 원대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위는 4개 시중 대형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의 핵심 거래 조건인 담보인정비율(LTV)에 관한 정보를 서로 교환·활용해 경쟁을 제한한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총 27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는 2020년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통해 신설된 '경쟁 제한적 정보교환 담합행위 금지 규정'이 적용된 첫 사례다.
담보인정비율은 대출 가능 금액을 비롯해 대출금리, 대출 서비스 수준 등 은행과 차주 간 담보대출 거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건이다. 담보인정비율이 낮아질수록 차주가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을 기준으로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은 줄어들게 된다. 이 경우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등 대출 조건이 불리해질 수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은 대기업보다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아 신용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한계가 있고 추가담보 제공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담보대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 등의 경우 은행이 담보인정비율을 어느 수준으로 결정하는지가 자금 조달 가능성과 규모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공정위 조사 결과, 4개 시중은행은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약 2년 동안 최소 736건에서 최대 7500건에 이르는 각 은행의 담보인정비율 정보 전체를 장기간에 걸쳐 수시로 교환했다. 담보인정비율 담당 실무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다른 은행에 직접 요청해 정보를 받았다. 이들은 당시 법 위반 가능성을 인식하고 정보교환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삭제했다. 실무자들은 다른 은행으로부터 전달받은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문서(인쇄물) 형태로 직접 받은 뒤, 최대 7500건에 달하는 데이터를 엑셀 파일에 일일이 입력했다. 이후 문서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없앴다. 심지어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정보교환이 중단되지 않도록 은행별 연락 담당자와 교환 방식 등을 정리해 전·후임자 간 인수인계까지 이뤄진 사실도 확인됐다.
이렇게 수집한 경쟁 은행의 정보는 실제 담보인정비율 결정 과정에 체계적으로 활용됐다. 각 은행은 담보인정비율을 조정할 때 다른 은행 대비 수준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내부 기준으로 마련해 운영해왔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유형의 부동산에 적용되는 담보인정비율이 다른 은행보다 높으면 대출금 회수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해 이를 낮췄다. 반대로 담보인정비율이 경쟁 은행보다 낮으면 고객 이탈을 우려해 상향 조정했다.
그 결과 4개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은 장기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이들 은행은 경쟁 은행의 영업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담보인정비율을 둘러싼 경쟁을 사실상 회피함으로써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차주들은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는 4대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이 비슷하게 유지되면서 거래은행 선택권이 제한되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들 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은 정보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비담합 은행들보다 전반적으로 낮았다. 2023년 기준 4개 은행의 평균 담보인정비율은 비담합 은행 대비 7.5%포인트(p) 낮았으며, 공장·토지 등 기업대출과 연관성이 큰 비주택 부동산의 경우 격차는 8.8%p까지 벌어졌다.
공정위는 4개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 담합행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4개 시중은행에 시정 명령(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총 2720억14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은행별 과징금을 보면, 하나은행(869억3100만 원)이 가장 많고 국민은행(697억4700만 원), 신한은행(638억100만 원), 우리은행(515억3500만 원) 순이다. 과징금은 법 행위로 인정되는 기간 각 은행의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관련 매출액은 각 은행이 담보대출을 통해 얻은 이자 수익으로, 4개 시중은행 전체 규모는 약 6조8000억 원에 달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 분야에서 장기간 유지되었던 경쟁 제한적 행태를 적발해 제재한 것"이라며 "독과점이 굳어진 분야에 경쟁을 촉진하여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고 기술력 및 사업능력이 충분한 중소기업에 필요한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해 경제 활력을 높이는 생산적 금융의 확산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어 "2021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새롭게 규정된 경쟁 제한적 정보교환 담합행위 금지 규정이 적용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