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533억 담배 손배소 2심도 패소…법원 "직접손해 피해자 아냐"

입력 2026-01-15 15:42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보험급여 지출은 의무 이행에 불과"…담배 제조·판매 불법성도 불인정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 "비참…상고 검토" vs 담배업계 "판결 존중"

▲담배 소송 항소심 선고 기일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담배 매대 모습이 보이고 있다. 건보공단은 흡연 폐해에 대한 담배회사들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2014년 4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한 뒤 2020년 12월에 항소했다. (뉴시스)
▲담배 소송 항소심 선고 기일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담배 매대 모습이 보이고 있다. 건보공단은 흡연 폐해에 대한 담배회사들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2014년 4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한 뒤 2020년 12월에 항소했다. (뉴시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에 들어간 진료비를 배상하라"며 국내외 주요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낸 500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법원은 공단을 직접 손해를 입은 피해자라고 보기 어렵고, 담배 제조·판매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6-1부(박해빈·권순민·이경훈 부장판사)는 15일 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533억 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이 공단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 흡연한 뒤 폐암·후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 3460여 명에게 2003~2012년 공단이 지급한 진료비 약 533억 원을 담배회사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2014년 4월 제기됐다. 공단은 담배회사가 제조·판매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질러 암 환자가 늘었고,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먼저 공단의 '직접 손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단이 보험급여를 지출한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며 "공단에게 어떠한 법익 침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단이 담배회사에도 고엽제 제조사처럼 '고도의 위험방지의무'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고엽제와 담배는 사용방법, 해악의 회피 가능성, 첨가제 기능 등에서 차이가 있어 담배회사에 고도의 위험방지의무 법리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고엽제는 위험 회피가 거의 불가능한 화학물질인 반면, 담배는 개인이 선택해 사용하는 기호품이고 법적으로 제조·판매·흡연이 허용돼 왔다는 점이 이유로 제시됐다.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뉴시스)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뉴시스)

담배에 제조상·설계상·표시상 결함이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단은 니코틴 함량을 줄인 담배를 만들지 않았고, 첨가제 사용이나 천공필터 도입이 설계상 결함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합리적인 대체 설계가 무엇인지 특정되지 않았고, 니코틴 저감 담배가 더 안전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첨가제에 대해서도 "담배의 유해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에 대한 경고가 부족했다는 주장도 기각됐다. 재판부는 "담뱃갑에 표시되는 경고문구는 사회의 흡연 인식과 요구에 맞춰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고, 해외 사례에 비춰도 위험성에 대한 경고 수준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며 "언론 보도와 법적 규제를 통해 흡연이 암 등 질환의 원인이 되고 중독성이 있다는 점은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에 따라 경고문구를 표시한 것 외에 추가 설명이나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표시상의 결함이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흡연자들이 위험성과 중독성을 몰라 흡연을 시작·유지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핵심 쟁점인 흡연과 폐암·후두암 사이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공단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앞선 대법원 판례를 들어, 통계적·역학적 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개인이 담배를 피웠고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둘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흡연과 폐암 사이 개연성을 인정하려면 개인이 흡연한 시기와 기간, 발병 시점, 건강상태, 생활습관, 가족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공단은 역학 연구 결과만으로도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역학 연구 결과가 특정 개인의 질병에 대한 개별적 원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예비적 청구까지 포함해 1심 판단에 위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2020년 11월 내려진 1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정기석 공단 이사장은 이날 선고에 직접 출석했으며, 선고 직후 "아쉬움을 넘어 비참하다"며 "담배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피해받는 국민은 병실에서 아파하고 죽어간다. 상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선고 이후 담배업계는 판결의 파장을 의식한 듯 신중한 반응을 내놨다. KT&G는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한다"며 "그간 법원이 견지해 온 일관된 판단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필립모리스도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지난 수년간 법원이 견지해 온 일관되고 명확한 법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유사 소송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련 법적 쟁점에 대한 법원 판단 방향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며 "당분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일 것"라고 전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복학' 올데프 애니, 활동 중단…특혜와 선례 사이 [해시태그]
  • 겉은 '구스' 속은 '오리'… '가짜 라벨'로 소비자 울린 17곳 철퇴 [이슈크래커]
  • 트럼프 “엔비디아 H200에 25% 관세”…삼성·SK, 단기 변동성 확대
  • 이젠 “동결이 기본값”…한은, 인하 거둔 이유는 환율과 금융안정
  • 규제 비웃듯 고개 든 집값… 작년 서울 아파트 9% 상승
  • 국대 AI 첫 탈락팀은 ‘네이버ㆍNC AI‘⋯정예팀 1곳 추가모집
  • 단독 靑 AI수석, 현대차·LG엔솔 만난다⋯"전기차 매력 높여라"
  • 서울 시내버스 협상 극적 타결⋯임금 2.9% 인상·정년 65세 연장
  • 오늘의 상승종목

  • 01.1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41,687,000
    • +1.39%
    • 이더리움
    • 4,884,000
    • -0.29%
    • 비트코인 캐시
    • 899,500
    • -0.5%
    • 리플
    • 3,082
    • -2.31%
    • 솔라나
    • 212,000
    • -0.33%
    • 에이다
    • 593
    • -4.97%
    • 트론
    • 449
    • +0.9%
    • 스텔라루멘
    • 340
    • -5.56%
    • 비트코인에스브이
    • 29,460
    • +0.24%
    • 체인링크
    • 20,430
    • -1.26%
    • 샌드박스
    • 182
    • -3.1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