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가 일상이 된 시대다. 뉴스, SNS, 댓글창 어디를 둘러봐도 날 선 감정들이 넘쳐난다. 신간 '이게 화낼 일인가'(예미)는 이 뜨거운 감정의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서기를 제안한다. 무조건 참으라는 훈계도, 내려놓으라는 막연한 조언도 아니다. 저자는 냉철하게 묻는다. 이 화가 어디서 왔으며, 정말 내가 원해서 내는 화인지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분노를 개인의 성격 결함이나 도덕적 실패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저자는 시각을 넓혀 진화론, 뇌과학, 사회적 환경이라는 거시적인 틀로 ‘화의 지도’를 그려낸다.
책은 화를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도구였던 진화 과정부터 설명한다. 뇌의 신경 전달 물질과 호르몬 작용이 어떻게 우리를 흥분 상태로 몰아넣는지, 그리고 디지털 환경과 사회적 학습이 어떻게 집단적 분노를 부추기는지 짚어낸다. 즉, 화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복합적인 구조와 환경이 만들어낸 반응이라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화를 ‘중독’의 메커니즘으로 해석한 부분이다. 저자는 분노를 표출할 때 느껴지는 일시적인 해소감이 뇌에 각인되면,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화를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관리하고 끊어내야 할 ‘패턴’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가족, 직장, 온라인 공간 등 현대인이 마주하는 구체적인 분노 유발 상황들도 빠짐없이 다룬다. 하지만 저자는 사건 자체보다 그 상황에서 왜 화가 증폭되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해법 역시 실용적이다. 순간적인 감정 조절 팁을 넘어선다. 저자는 수면, 운동, 호흡, 생활 리듬과 같은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한다. 건강한 신체와 사고의 습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감정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메시지다.
저자 권기만의 이력은 이 책의 넓은 시야를 뒷받침한다.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시작해 정부 부대변인직을 수락하며 공직에 입문, 10년 넘게 재직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학 박사에 이어 보건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메르스와 코로나19 등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중과 소통했던 경험은 개인의 감정을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통찰로 이어졌다.
출판사 예미 관계자는 “이 책은 분노를 도덕의 문제로 재단하지 않고, 개인과 사회가 함께 다뤄야 할 주제로 격상시킨다”며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태도가 이 책의 미덕”이라고 평했다.
'이게 화낼 일인가'는 화를 없애야 할 적이 아닌, 이해해야 할 신호로 바라본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화 때문에 괴로워했던 독자라면, 이 책이 건네는 차분한 질문들이 든든한 ‘마음의 브레이크’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