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물량 공세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위기를 맞은 국내 화학산업이 '범용'을 버리고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로 체질을 완전히 바꾼다.
정부와 산업계는 반도체·미래차 등 전방 수요산업과 화학업계가 뭉친 '원팀' 체제를 가동해 현재 글로벌 5위 수준인 화학산업 경쟁력을 2030년까지 세계 4위로 끌어올린다.
산업통상부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박동일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을 비롯해 지자체 및 산·학·연 관계자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의 'K-화학 차세대 기술혁신 로드맵 2030'을 발표했다.
이번 로드맵은 범용 소재 중심의 기존 사업 구조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는 △고부가 전환 △친환경 전환 △글로벌 환경규제 대응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과 인프라를 집중 고도화해 핵심 소재 기술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 6개월간 전문가 80여 명과 기업 연구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217개의 핵심 요소기술을 도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화학산업의 디지털 전환(DX)을 넘어선 'M.AX(Material AI Transformation)' 전략이다. 소재 설계부터 제조 공정 전반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신소재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지능형 공정 제어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동안 화학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나 홀로 R&D' 방식도 뜯어고친다. 이날 출범한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에는 수요기업, 중소·중견기업, 연구소 등 130개 기관이 참여해 가치사슬(벨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핵심은 '수요 연계형' 기술 개발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미래차, 이차전지 등 9개 분과별로 '플래그십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수요 앵커기업이 필요한 핵심 소재의 성능 요건을 제시하면, 원료-소재 단계의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맞춤형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주요 과제로는 △AI 반도체 패키징용 초저유전 열관리 소재 △폴더블·웨어러블 디스플레이용 극한 유연 소재 △전기차용 초경량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개발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번 로드맵의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내년 1분기 중 대형 R&D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기술의 성숙도와 시장성에 따라 △단기집중형 △장기관리형 △시장개척형 △성과확산형 등으로 분류해 맞춤형 지원을 펼칠 계획이다.
박동일 산업정책실장은 "석유화학기업들이 19일 사업재편안을 제출했고, 전날 열린 산업부 장관 주재 간담회에서 사업재편 이행을 위한 전력투구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로드맵이 위기에 처한 화학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산업부는 화학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R&D와 정책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