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까지 D-3.
거리에서는 연말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의 크리마스 포토존은 문전성시를 이루고요. 카페든 식당이든 캐럴이 흘러나옵니다. 연말을 기념하는 세일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시기만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케이크입니다. 가족과 나눠 먹든, 친구들과 홈파티를 열든, 혹은 혼자서 조용히 연말을 보내든 간에 케이크는 어느새 크리스마스의 대표 오브제처럼 자리 잡았죠. 일부 제품의 경우 예약하지 않으면 구경하지도 못할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른 기류가 감지됩니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기본 선택지였던 공식(?)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주인공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초록색 감성, 사실 새로운 맛은 아닙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양극화'입니다. 특히 호텔 케이크 라인업을 보면 그 격차가 숫자로 뚜렷하게 드러나는데요. 50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 케이크가 등장한 동시에 1만 원대 안팎의 제품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죠. 같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지만 소비자가 마주한 선택지는 극단적으로 갈린 셈입니다.
하이엔드 시장의 정점에는 50만 원대 케이크가 자리했습니다. 서울신라호텔은 화이트 트러플을 사용한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를 50만 원에 선보였는데요. 신라호텔은 이를 포함해 또 다른 트러플 케이크 '누아 트러플 미니'(8만 원), 레드벨벳 케이크 '루미너스 레드'(16만5000원), 트리 모양의 '화이트 홀리데이'(18만 원), 신라의 시그니처인 '신라베어'를 토대로 한 '더 조이풀 신라베어'(35만 원) 등 총 5종의 케이크를 출시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비싼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는 하루 3개 한정 판매라는 조건까지 더해지면서, 케이크를 넘어 연말 시즌을 상징하는 '럭셔리 오브제'에 가까운 존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신라호텔 케이크 중에서 제일 비싼 케이크는 '더 테이스트 오브 럭셔리'로, 40만 원에 판매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호텔에서도 이어집니다. 워커힐 호텔은 화이트 초콜릿으로 겨울 마을을 구현한 38만 원대 케이크를,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는 실제로 회전하며 캐럴이 나오는 35만 원의 시그니처 케이크 '메리고라운드 멜로디'를 내놨습니다. JW 메리어트 서울과 포시즌스, 콘래드, 파크 하얏트 등도 각 호텔의 브랜드 스토리를 반영한 시즌 한정 케이크를 출시하며 경쟁에 합류했죠.
다만 모든 소비자가 초고가 케이크에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 호텔 업계에서는 10만~30만 원대의 시그니처 케이크를 중심으로 스테디셀러 라인을 유지하는 한편, 일부 호텔은 5만~9만 원대 제품으로 접근성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1만 원 안팎의 '가성비' 케이크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SSG닷컴은 박준우 셰프와 협업한 프랑스식 머랭 케이크 2종을 단독 출시했는데요. 개별 포장된 2개입 구성의 가격은 1만1980원입니다.
편의점 GS25는 1~2인이 즐길 수 있는 미니케이크 2종을 각각 4900원에 선보였고, 크리스마스 홀케이크 역시 1만 원대 후반 가격대로 선보였습니다. 단순히 가격만 착한 게 아닙니다. '버터베어', '깜자' 등 인기 캐릭터 지식재산권(IP)과의 협업을 통해 젊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죠. 이마트는 신세계푸드와 손잡고 전국 이마트 내 베이커리 매장에서 겨울 딸기를 활용한 시즌 한정 홀케이크를 1만 원대부터 판매, 가격대별 수요를 공략합니다.

가격대가 극단적으로 갈린 만큼,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매년 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케이크보다는 특별한 '한 끗'이 있는 케이크를 추구하는 건데요. 이 지점에서 올해 유독 두드러진 키워드가 바로 '초록색'입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시장에서는 피스타치오와 말차를 중심으로 한 그린 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새로운 맛이라기보다는, 이미 익숙해진 취향이 연말 시즌을 만나 다시 한 번 존재감을 키운 모습입니다.
피스타치오는 올해 디저트 전반을 관통한 키워드입니다. '두바이 초콜릿' 유행 이후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이미지가 각인되면서, 케이크·초콜릿·아이스크림 등 디저트 시장 전반에 빠르게 확산했죠. 고소하면서도 싶은 풍미, 여기에 선명한 녹색 비주얼까지 더해지면서 '찍기 좋은 맛'으로도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두바이 쫀득쿠키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각종 관련 상품도 출시되고 있는데요. 케이크도 이를 피할 수 없었죠. 두바이 초콜릿 케이크부터 두바이 수건 케이크, 두바이 초콜릿 김밥(?) 등 초를 꽂을 수 있는 모양의 두바이 초콜릿 디저트라면 모두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주목받는 분위깁니다. 피스타치오의 초록색은 크리스마스 트리도 연상케 하면서 연말 시즌 대표 재료로 부상했습니다.
말차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올해 뜨겁게 불거진 말차 열풍은 여전히 유효한데요. 쌉싸름한 맛과 달콤한 맛의 균형, 건강하다는 이미지 덕분에 '어른 입맛'을 겨냥한 맛으로 꾸준히 선택받고 있습니다. 특히 화려한 장식보다는 색감과 질감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말차 케이크는 미니멀한 연말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전 대표 베이커리 성심당의 '말차 시루'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말차 시루'는 그간 성심당이 인기를 끌어온 '시루' 시리즈의 신제품인데요. 기존 '딸기 시루'에 말차 크림을 더해 눈에 확 띄는 비주얼을 자랑합니다. 1인 1개씩 구매할 수 있는 '말차 시루'는 당근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2만~5만 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같은 초록색 트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취향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딸기처럼 계절성을 강하게 타지 않으면서도 트렌디하다는 인식이 쌓여온 재료들이 연말이라는 기회를 맞아 부상한 거죠.

가격과 맛이 갈린 자리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케이크는 '맛있는 디저트'라기보다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에 가까운데요. 비싼 케이크를 고르는 사람도, 가성비 케이크를 선택한 사람도 '올해 연말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셈이죠.
이 변화는 하이엔드 케이크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회전하며 캐럴이 나오는 오르골 케이크처럼 시각·청각을 자극하는 제품들은, 먹기 전부터 역할을 다합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공간 분위기를 완성하는 오브제로 소비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의 회전목마 케이크처럼 모양도, 기능도(?) 특별한 케이크는 맛보다 경험 자체가 구매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고가 라인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1만 원대, 혹은 그보다 저렴한 케이크 역시 '경험형 소비' 일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캐릭터 IP를 활용한 디자인, 혼자서 즐기기 좋은 미니 사이즈, 인증샷에 특화된 비주얼 등은 가격 대비 만족감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작동하죠.
결국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경험'입니다. 비싸든 저렴하든, 초록색이든 딸기든, 케이크는 연말의 분위기와 취향을 압축해 보여주는 매개체가 됐죠.
이에 2025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더 이상 맛으로만 평가되지 않습니다. 가격부터 색, 디자인, 그리고 케이크 포장을 풀어내는 경험까지, 케이크 하나에 담긴 선택이 곧 연말을 보내는 방식이 된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