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급 불안정 해소 실질 기여
원조 받던 韓, 美 돕는 나라로 발돋움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위해 물 밑에서 힘을 보탠 ‘비공식 조력자’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그 주인공은 바로 ‘계란(달걀)’이다.
올 3월 초 충청남도 아산과 충북 충주의 한 농장에서 시작된 계란 20톤(약 33만5000여 알)의 대미(對美) 수출은 단순한 무역 통계를 넘어, 한미 동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계란 외교(Egg Diplomacy)’의 탄생이다. 이 작은 타원형 식재료가 어떻게 양국 관계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을까.
지난해부터 미국은 유례없는 악재에 시달렸다.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는 수많은 가금류를 폐사시켰고, 이는 곧바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됐다. 미국의 계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샐러드 볼과 오믈렛을 위협하는 이른바 ‘에그플레이션(Eggflation)’을 일으켰다.
평범한 아침 식사가 호화로운 만찬처럼 바뀐 셈인데, 특히 서민 경제와 직결된 필수 식재료의 품귀 현상은 미국 정부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당시 미국 내 12개들이 A등급 대란의 평균 소매 가격은 4.95달러로,아 전월 대비 15.2% 올랐고 전년 동월 대비 53% 급등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바로 ‘K-계란’이었다. 충남 아산의 계림농장과 충북 충주의 무지개농장은 각각 계란 약 33만 알을 한국 최초로 미국 땅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이다. 당시 미국 현지 언론은 ‘한국산 계란이 미국인의 브런치 메뉴를 구했다’는 등으로 대서특필했다.
대미 계란 수출을 놓고 ‘계란 몇 알이 거대한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무슨 역할을 했겠느냐, 과장된 해석이 아니냐’는 다소 차가운 시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출은 미국의 긴급한 수급 불안정 해소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상업적 거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은 수입 농산물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검역 및 위생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 기준은 관세처럼 눈에 보이는 장벽이 아니기에 일단 뚫어내면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농산물의 위생 기준은 정치적·외교적 관계의 신뢰가 없으면 통과 자체가 매우 어려운 영역으로 간주된다. K-계란이 미국 농무부(USDA)의 까다로운 기준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는 건, 한국 농축산물의 위생 관리 및 품질 경쟁력이 국제 최고 수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올 3월 말 브룩 롤린스 미국 농무부 장관이 한국에서 더 많은 계란을 수입하겠다고 언급했다는 로이터 통신 보도도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K-계란은 미국 현지에서 값이 치솟은 미국 계란의 대체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한국 달걀(12개당 2.9달러로)은 미국(4.13달러)보다 30%가량 저렴했다. 이는 세계 최대 계란 수출국으로 손꼽히는 폴란드(3.22달러)보다도 저렴한 수준이다.
한국의 계란 수출은 미국의 AI 사태라는 비상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인도적 지원’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과거 한국전쟁 직후 미국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물자와 기술을 지원하는 일방적인 원조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계란 외교’ 덕으로 이제 한국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동맹국에게 필수 식재료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돕는 나라’의 위치에 올랐다.
이는 양국 관계가 일방적 수혜 관계에서 상호 협력하는 수평적 파트너 관계로 발전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도움이 미국의 식탁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긍정 효과를 주면서 양국 국민 간의 유대감과 상호 신뢰는 더욱 끈끈해졌다.
결국 충청도 농장에서 출발한 약 33만 알의 계란은 단순히 단백질 공급원을 넘어 ‘동맹이 어려울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명쾌하고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계란 외교’가 한미 관계를 군사·안보 동맹을 넘어, 일상과 경제를 공유하는 진정한 우방 관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작은 타원형 식재료, 33만 알이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비공식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란 얘기가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