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통폐합 이후'가 과제⋯제도 정비 요구 커져 [요동치는 대학]

입력 2025-1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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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구조개선법’ 내년 8월부터 시행
통폐합·폐교 본격화에 법적 분쟁 증가 우려
시행령에 교직원·학생 보호 방안 담아야
“부실 대학 '꼬리 자르기' 접근으론 부족”

▲대학 캠퍼스 전경. (강문정 기자·미드저니)
▲대학 캠퍼스 전경. (강문정 기자·미드저니)

지난 20년간 대학 재편이 이어지면서 논의의 초점은 이제 단순한 통폐합 절차가 아니라 ‘재편 이후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 재편 과정에서 재산 귀속, 채무 승계, 교직원 신분, 학생 학사 처리 등 핵심 쟁점이 대학별로 제각각 처리되면서 분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구조조정이 장기간 표류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학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키웠다는 평가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내년 8월 ‘사립대 구조개선법’이 시행된다. 올 7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학령인구 감소와 장기적 재정난으로 부실화 위험이 커진 대학을 더는 개별 대학의 자율 판단이나 교육부의 행정지도에만 맡기지 않고,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구조개선법은 경영위기대학 지정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재무구조 개선부터 통폐합·폐교·법인 해산에 이르는 단계별 절차를 구체화했다. 그동안 사립대 구조조정은 재정지원 제한이나 정원 감축 등 비공식적 수단에 의존해 왔는데, 법 제정을 통해 구조조정 절차의 정당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사학법인 재산 정리 방식이 제도권 안에서 관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구조개선법은 해산 시 남는 재산 일부를 공익 목적 기금으로 전환해 학생 보호, 교직원 위로금, 지역 교육사업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잔여재산의 최대 15%를 설립자가 ‘해산정리금’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조항도 포함됐다. 폐교 시 재산이 전액 국가로 귀속되면서 구조조정이 지연돼 온 기존 한계를 보완하려는 장치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부실 대학 정리가 더뎠던 이유 중 하나는 폐교하면 재산이 모두 국가로 귀속돼 설립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라며 “잔여재산 일부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한 점은 구조조정의 퇴로를 열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 시행 이후의 파장을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내년 8월부터 구조개선법이 본격 적용되면 폐교나 대학 간 통폐합 논의가 보다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대학이나 총장을 상대로 한 각종 소송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 고용 안전망이 취약한 교수·교직원들이 생계와 신분 보장을 둘러싸고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학 현장에서는 이미 소송이 증가하는 흐름이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가 지난해 2~3월 대학 소송 사례를 조사·종합한 결과, 조사 기간 중 사례를 제출한 대학·법인은 14곳, 확인된 소송 건수는 총 50건에 달했다. 사총협은 “각종 소송 증가로 대학의 정상적 운영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협의회 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제기했다.

소송 유형을 보면 교원노조 단체협약 관련 소송이 16건으로 가장 많았고, 교직원 임용·징계 관련 소송이 13건, 교직원 임금 관련 소송도 13건에 이르렀다. 학생 등록금 환불 관련 소송은 3건이었다.

이 밖에도 교내 입점업체와의 임대차 분쟁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교육당국의 대학 평가 통보나 시정명령을 둘러싼 분쟁, 공공요금 감면 취소·부과, 정부 지원 연구사업비 반환 문제,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 등 다양한 법적 갈등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구조개선법 시행 이후 이러한 법적 분쟁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학 구조조정이 가시화될수록 재산 처리, 고용 승계, 임금·퇴직금, 학생 학사 보호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한꺼번에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인성 사총협 사무처장은 "특히 사립대 교원과 교직원들은 폐교가 현실화될 경우 대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며 "총장이나 법인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조개선법의 실효성은 법 자체보다 시행령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성원 보호 기준과 분쟁 예방 장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느냐에 따라, 제도가 구조조정의 출구가 될지, 또 다른 혼란의 출발점이 될지가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설립자에게는 재산 처분의 길을 열어주면서도, 교직원과 학생 보호 장치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며 “교원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학생 역시 단순 편입만으로 학업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비·생활비 지원, 이동 거리, 전공 연계성 등 구체적 기준을 시행령에 명확히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고등교육 재편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임 연구원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지되는 대학도 있고, 지방에 있지만 특성화가 잘 된 대학도 있다”며 “정부가 고등교육 체계를 어떻게 재설계할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령인구 감소 대응을 부실 대학 정리 수준에만 맡기는 ‘꼬리 자르기식 접근’으로는 고등교육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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