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밖에 없다”…희귀·중증질환 보장 강화 촉구

입력 2025-12-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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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약가제도 개선 통해 환자 접근성 강화 계획

▲9일 서울대학교 암연구소에서 열린 ‘새 정부 희귀·중증질환 보장 강화의 방향은?’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박진희 수습기자 @jinhee12)
▲9일 서울대학교 암연구소에서 열린 ‘새 정부 희귀·중증질환 보장 강화의 방향은?’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박진희 수습기자 @jinhee12)

“진단이 평균적으로 수년 지연되고 치료법은 존재하더라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보험 지원도 부족하고 행정 장애도 너무 많습니다. 치료를 포기하게 하는 게 의학적 이유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김현주 한국저인산효소증환우회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암연구소 2층 이건희홀에서 ‘새 정부 희귀·중증질환 보장 강화의 방향은?’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희귀질환 환우와 보호자에게 놓인 현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저인산효소증은 ALPL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뼈·치아·근육·전신 대사 등에 영향을 미치는 희귀질환이다. 국내 환자는 50여 명에 불과하고 환자들은 일상적인 움직임조차 통증과 골절의 위험 속에 살아가야 한다.

김 회장은 “희귀질환의 가장 큰 어려움은 병 자체가 아닐 때가 많다”면서 “증상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른 질환과 유사해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진단이 내려진 후에도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치료제가 있더라도 비용의 장벽, 보험의 부재, 접근성 부족 등으로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저인산효소증의 유일한 치료제인 '스트렌식'의 건보 급여 조건이 까다롭다. △낮은 알칼리인산분해효소(ALP) △높은 피리독살-5-인산(PLP) △엑스레이상 골증상 △진단 당시 만 19세 미만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김 회장은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올바른 치료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촉구했다.

정미경 한국폰히펠린다우증후군환우회 총무는 폰히펠린다우증후군의 유일한 치료제인 ‘웰리렉’의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폰히펠린다우증후군은 망막의 혈관종증과 다양한 장기에 악성 및 양성 종양을 유발하는 복합 유전질환이다. 인구 5만 명당 1명이 발병하며 환자의 절반 이상이 중추신경계 내 혈관아세포종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질병의 원인 대부분은 유전으로 알려져 있다.

정 총무에 따르면 대부분의 폰히펠린다우증후군 환우들은 하루 정량인 3알보다 적은 1알을 복용하고 있다. 정량(90알) 기준으로 한 달 약값이 2200만 원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환우는 하루 3알 정량 복용 때는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2알로 줄인 뒤 호전이 느려졌다”면서 “웰리렉이 이번 달 건강보험심사평원의 중증질환심의위원회에 상정 후 통과돼 급여화된 적정 가격으로 먹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간 국내 희귀·중증질환 환자들은 오랜 시간 치료 접근성 문제에 가로막혀왔다. 현행 약가제도에서는 신약 허가와 급여 등재까지의 절차와 기간이 길어 치료가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됐다. 비용 측면에서는 진료비 부담이 큰 질환의 경우 연간 2억~3억 원에 달했고, 이외에도 가족 간병비, 돌봄 부담, 경제활동 제한까지 고려한다면 수치로 드러나지 않은 고통은 더 컸다.

새로운 치료제가 나와도 국내 진입 문턱이 높은 편이었다. 신약 허가 후 급여까지 평균 소요 시간이 한국은 18개월로, 일본(3개월), 프랑스(15개월)에 비해 느렸다. 신약이 글로벌에서 출시된 이후 1년 이내 한국에 출시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신약이 급여 등재되는 비율은 22%로 OECD 평균인 29%에 못 미쳤다.

정부는 환자 접근성 강화와 제약산업 촉진을 위한 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대폭 줄일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기준 대상 평가 기간을 기존 최대 150일에서 1개월로 단축하고 군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 진행하는 약가·총액제한액·공급의무 협상도 현행 최대 60일에서 1개월로 줄인다. 실제 약가 협상과 조정은 건보공단으로 일원화해 불필요한 중복 절차를 없앴고, 최종 단계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도 1개월 안에 처리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현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은 “신약과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와 함께 제약사가 연구개발(R&D) 혁신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약가제도를 개편하고자 했다. 또한 약품비 급증에서도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체계를 합리적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유연한 약가체계로 혁신적 의약품을 조기에 도입할 수 있게 하고, 혁신 창출 노력 정도에 비례한 보상을 부여할 계획이다. 환자들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번 정부 정책이 환자들의 치료제 접근성 개선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등재절차 단축, 치료제에 대한 사후 평가 등은 신속하게 치료제를 쓰고 싶은 환지가 원하고 필요했던 변화다. 이전과는 다르게 환자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 패러다임의 출발점이라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 사무총장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하나의 제도나 약가 결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단부터 치료, 재활, 생활지원이 연결돼 작동될 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 과정 전체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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