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반도체·바이오 대규모 투자 급증…기존 금융으론 한계"
조재한 실장 “지원금 노린 ‘첨단기술워싱’ 경계…심사 전문성 높여야”

내달 출범하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기존 정책금융과 기능이 중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 정책 금융 전문가들은 "기존의 소액 지원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를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며 펀드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25 NEXT 100 포럼’ 패널 토론에서는 ‘산업·금융정책 방향성’을 주제로 국민성장펀드의 실효성과 한국산업은행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토론의 핵심 쟁점은 '정책 중복'이었다. 앞서 일각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정부가 이미 조성한 인공지능(AI) 혁신펀드, K-바이오·백신펀드 등과 투자 대상이 겹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규모의 경제'를 근거로 중복 우려를 일축했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산업 환경 변화로 자금 투입의 단위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 30조 원 이상, 바이오 신약 개발 임상에만 12조 원이 들어가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존처럼 시장금리 언저리에서 제공하던 대출 방식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금 수요가 발생하고 있어 새로운 수단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 역시 "현재 국내 정책금융은 너무 촘촘하게 나뉘어 '다부문 소액 지원 체제'로 굳어지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성장펀드는 소액 지원의 한계에서 벗어나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시발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며 기존 정책금융과는 체급과 역할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자금이 풀리는 만큼 펀드 조성을 주도하는 산은의 '옥석 가리기' 역량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산업정책기획실장은 지원금을 노리고 기업을 포장하는 이른바 '첨단기술워싱(High-tech Washing)'을 경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실장은 "정부가 첨단전략산업 등 테마를 정해 지원하면 기업들이 그 틀에 맞춰 겉모습만 꾸미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산은이 미국 금융사들처럼 산업 특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실장은 "미국 자본이 강한 이유는 각 산업별 특화된 금융 역량을 바탕으로 기업을 육성해 왔기 때문"이라며 "산은도 특정 산업을 키우는 투자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학 산은 영업·투자기획부장은 ‘신속성’과 ‘검증’ 사이의 균형점을 찾겠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국민성장펀드는 어떤 기업을 픽업(pick-up)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며 “쌓아 온 심사 노하우와 펀드가 추구하는 속도를 잘 조합해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