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다카이치 총리의 태도에 찬반양론이 있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임을 트럼프에게 각인시킨 훌륭한 외교를 했다는 우호적 시선과 “강대국 미국에 아부하는 추한 외교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이 교차했다.
하여튼 일련의 외교 일정을 정력적으로 소화한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이 많아 그의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일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태극기에 고개를 숙인 모습이 포착돼 극우파인데도 생각보다 겸손하다는 평가가 한국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도 한국에서의 공식행사에서 태극기에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실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한일 두 정상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다짐하면서 셔틀외교를 지속한다는 데 합의해 양국 국민의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걱정은 모두 없어졌다”고 두 나라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한일정상회담 이틀 전 두바이로 향하는 한국 공군기가 독도 상공을 지나갔다는 이유로 일본 측이 오키나와에서의 급유를 거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다카이치 총리의 지시로 알려졌다.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며 독도 상공은 ‘한국 방공식별지역(KADIZ)’에 포함되는데도 앞으로도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다카이치의 속셈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다.
자민당과 국회에서 다카이치 총리 자체의 기반은 약하다. 자민당 내에서는 아소파가 다카이치 총리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다카이치는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의 의향을 무시할 수 없다. 아소는 ‘재정 신중파’에 가까워서 다카이치가 추진하려는 감세나 적극적 재정정책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그런 아소의 벽을 뛰어넘을지가 다카이치 내각이 계속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말버릇, 예를 들어 “강한 일본의 재건!”,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 등을 몇 번이나 사용하면서 자신이 후계자임을 강조했다. 그런 퍼포먼스는 물론 아베 정권에서 ‘그림자 실세’로 불린 아베노믹스의 입안자 이마이 다카야 전 총리 비서관을 이번에 장관급인 내각관방참여(총리 직속의 정책자문)에 임명해 아베노믹스를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한국 측에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이마이는 2019년 7월 아베 정권이 감행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즉 수출규제의 입안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또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미국에 제안한 인도·태평양정책의 입안자인 외무성의 이치카와 게이이치를 국가안보국장에 임명했다. 즉 아베 정권 때의 브레인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임명하면서 아베 정치 복원을 목표로 삼았다. 즉, 기반이 약한 다카이치 총리가 기댈 수 있는 데가 아베 전 총리의 유산과 아베와 친교가 깊었던 트럼프 대통령인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카이치 일본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공약 중 가장 큰 것은 헌법 개정이다. 이것도 아베 전 총리와 똑같다. 즉 다카이치 총리는 평화헌법의 기초인 헌법 제9조를 개정하여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정식으로 인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일본을 바꾸는 것이 목표다. 헌법 개정의 마지막 절차는 국민투표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이 개헌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점이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수가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허가 받은 후 다카이치 총리도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제공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다카이치의 주장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평화헌법 개정과 ‘비핵 3원칙’을 개정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당초 2027년까지로 정해졌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방위비 증액을 올해 안에 달성하겠다고 트럼프에게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약속은 재원의 근거가 전혀 없다.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다카이치 총리이지만 근거 없는 얘기가 많아지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민당과 연정을 한 일본유신회와의 관계도 부담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중 하나는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인 후지타 후미타케의 비리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그 비리를 연일 공격하고 있는 사람이 일본유신회 창립자인 하시모토 도루 변호사라는 사실도 다카이치와 자민당에는 큰 압박이다.
일본유신회가 자민당에 연정 조건으로 요구해 서로 합의한 ‘국회의원 수 10% 삭감안’도 의원들의 반대로 이미 암초를 만난 상태가 되었다.
자민당과의 연정을 청산한 공명당은 다음 총선거에서는 입헌민주당과 선거협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고 일본유신회가 자민당과 선거협력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므로 이대로는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50석 이상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된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대해서도 정상회담을 요청한 다카이치 총리가 의지하는 곳은 외교이지만 내정문제에서 여러 곳에 지뢰가 숨어 있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내각이 국내외 압력으로 단명에 그칠 가능성도 벌써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최근 다카이치 총리의 외교적 실수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7일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으니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이에 중국 측이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쉔젠 주오사카 총영사가 다카이치에 대해 “멋대로 돌진해온 그 더러운 목을 주저 없이 베어 버리겠다”고 X(옛 트위터)에 투고해 물의를 빚었다. 지금 이 투고 자체는 삭제되었지만 쉔 총영사는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 일본 내에서는 총영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역대 총리가 항상 애매하게 답변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독립’ 문제를 놓고 국회라는 장에서 중국을 공격해야 할 적국으로 본다는 취지로 분명히 말해 버린 데 있다. 중국 정부는 일본 여행이나 유학 자숙을 호소하기 시작해 연일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이 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어서 중·일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APEC에서 다카이치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나서 대만 대표와도 만난 것은 물론 그 사진을 공개한 것이 중국 측 불만의 시작이었다. 1972년 일본 스스로 기본적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현 총리가 뒤집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중국의 공격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이것이 국내 기반이 약한 다카이치 정권에 또 하나의 치명적 타격이 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