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까지 최대 30% 순고용 감소”

인공지능(AI)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금융권 노동시장도 뚜렷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담·심사·모니터링 등 금융업의 핵심 업무에 자동화가 확산되면서 기존 직무의 비중은 서서히 줄고, 동시에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역할은 더 빠르게 늘어나는 ‘이중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OECD가 발표한 ‘인공지능과 노동시장(AI and the Labour Market)’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절반 이상인 56.5%가 “업무 내 일부 과제가 AI로 대체됐다”고 답했고, 32.2%는 “직무 수행에 요구되는 숙련 수준이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직무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 디지털화와 금융산업 고용’ 연구에서는 모바일뱅킹 이용 증가와 전산예산 확대 등 주요 디지털화 지표가 은행 고용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확인됐다. 모바일뱅킹 이용 건수가 1% 늘면 은행 인력은 약 1.5%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직무 전망치를 적용한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2027년까지 국내 은행·보험업에서 15~30% 수준의 순고용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상담·민원 직군에서의 변화가 눈에 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콜센터 인력 현황’에 따르면, 국내 8개 카드사의 상담원 수는 5월 말 기준 1만90명으로 집계됐다. 2019년 말보다 2346명(19%) 감소한 수치다. 단순 계산하면 5년 동안 매년 약 469명씩 상담 인력이 줄어든 셈이다. 챗봇·음성봇·AI 상담 플랫폼이 빠르게 안정화되면서 상담 업무의 표준화가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모든 영역에서 인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AI 도입 확산과 함께 데이터·AI 거버넌스·보안 등 감시·통제 기반 직무는 오히려 수요가 커지고 있다. AI 모델 리스크 관리, 데이터 품질 검증, 개인정보보호 체계 구축 등이 금융사의 핵심 관리 과제로 떠오르면서 데이터·보안·AI 전문 인력 채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일부 금융사는 내부 직원 대상 AI 교육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며 인력 재교육에 나서고 있다.
장성연 숭실대학교 교수는 “은행업의 경우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고용 축소 압력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재교육 체계 강화와 함께 빅테크에 대한 적정 규율 마련, 산·학·연 연계를 통한 디지털 인력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