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해운 시황 악화에 대비해 2조 원 규모의 '해운산업 위기대응펀드'를 전격 가동했다.
중소·중견 선사의 경영 안정과 ESG 경영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이번 조치는, 코로나19 이후 급등락을 반복해온 글로벌 해운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 국적선사의 체질 개선을 뒷받침할 핵심 안전판이 될 전망이다.
해진공은 17일 "오는 23~24일 한국해운협회 대회의실에서 '해운산업 위기대응펀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위기대응펀드 내 '해운산업 ESG지원펀드'공모사업 참여 선사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 펀드는 △ESG경영 촉진을 위한 ‘해운산업 ESG지원펀드’ △조조정 지원을 위한 ‘해운산업 구조혁신펀드’의 두 축으로 구성됐다.
펀드 전체 규모는 약 2조 원으로, 그중 ESG 지원펀드가 친환경 선박 교체 및 지속가능채권(녹색·지속가능연계채권) 인수 등에 투입된다.
공모는 이달 16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며, 대상은 국내 중견·중소 선사다.
신청 전 해진공 기업구조개선팀의 사전 상담을 거쳐야 하며, 이후 서류 접수와 내부 심사를 통해 최종 지원 대상이 결정된다.
해운산업은 글로벌 운임지수 하락과 물동량 감소로 장기 침체 조짐이 뚜렷하다.
특히 대형 선사 대비 자금 여력이 취약한 중소 선사들은 금융조달난과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해진공은 올해 초부터 위기대응펀드 확대를 추진해 왔으며, 이번에 2조 원 규모로 확정됐다.
'해운산업 구조혁신펀드'는 중소 선사의 부실화 이전 단계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기능을 맡는다.
사후 구제보다 사전 리스크 완화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대상 기업에 대한 실사와 내부 심사 후, 유동성 지원·채무 조정·선박 운항 효율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이 집행될 예정이다.
이번 위기대응펀드는 단기적 위기관리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해운산업의 ‘친환경 전환’을 촉진하는 이중 목표를 갖는다.
ESG 지원펀드는 해운업의 탈탄소 흐름에 맞춰 친환경 선박 도입, 선박 효율 개선, 온실가스 감축 기술 등에 대한 투자 촉진을 유도한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30년까지 해운 탄소배출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가운데, 국내 선사들의 ESG 경영 강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부상했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이번 펀드는 저시황기 국적선사의 경영 불안을 완화하고, 기업이 성장 동력을 잃지 않도록 돕기 위해 조성됐다”며 “특히 중소·중견선사가 ESG 경영 기반을 확립해 글로벌 해운 네트워크 속에서 자생력을 확보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펀드가 제때 집행되지 못하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해운업은 시황 변동이 빠른 산업인 만큼, 자금 지원의 속도와 투명한 심사 절차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또 ESG 펀드와 구조혁신펀드의 지원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되면 실질적인 구조개선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펀드가 단순한 자금지원이 아니라, 경영혁신과 친환경 전환을 병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행돼야 한다”며 “특히 지역 중소 해운사들이 실질적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펀드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과거 한진해운 사태의 교훈이 있다.
당시 구조조정 지연으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붕괴되고, 수출 물류 차질이 장기화되며 국내 해운산업 전반이 신뢰 위기를 겪었다.
이후 정부는 2018년 해진공을 설립하며 ‘공적 금융 안전망’을 제도화했고, 이번 펀드는 그 체계가 본격 가동되는 첫 사례다.
국적 해운산업은 여전히 세계 시장의 파도 한가운데 있다.
운임지수 하락, 탈탄소 규제, 고금리 부담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지속 가능한 해운’의 해법은 결국 금융지원과 구조혁신의 병행에 있다.
2조 원짜리 위기대응펀드가 단순한 긴급 처방이 아니라, 한국 해운의 체질을 바꾸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