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체제 위협으로도 이어져
성인 10명 중 7명 “민주주의 작동 불만족”
“정치인 대한 유권자 눈높이 낮추며 사회적 비용 초래”
정치의 언어는 타협이 아닌 대립으로, 경제의 온도는 계층에 따라 극단으로 갈라졌다. 부와 일자리, 교육과 기회가 양극단으로 치닫자 중산층은 붕괴되고 청년 세대는 계층 이동의 희망을 잃었다. 공존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념보다 감정이 정치의 기준이 되고 사회는 협력 대신 불신으로 굳어갔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안에서도 최소한의 공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부의 집중이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는 이제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 성장과 신뢰, 민주주의의 토대를 동시에 흔드는 시대의 균열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본지는 그 균열의 원인을 진단하고 다시 공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수도권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스팔트 극우와 개딸. 한국 사회 분열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소득 격차를 넘어 정치·사회 전반의 신뢰가 무너지며, 민주주의 작동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한 번의 계엄과 두 번의 탄핵이 이를 증명한다. 1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분노한 극우성향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무단 진입해 집기를 파손하고 경찰, 민간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서부지법 난동사태도 충격을 줬다. 양극화는 경제 성장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제도적 내구성까지 약화 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를 “단순한 ‘사실’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고 진단한다.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사회 자산 불평등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수치가 순자산 지니계수다.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기준으로 부의 분배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다. 순자산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울 수록 부의 분배가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한국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1년 0.619에서 2017년 0.584로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2018년부터는 줄곧 오르더니 2024년 0.612까지 치솟았다. 자산 격차 심화는 일에 대한 동기 부여를 낮추고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 역시 전세계 국가 중 상위권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22년 실시한 ‘정치적 양극화 국제 비교조사’에서, 한국은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심한 국가로 꼽혔다. 한국 성인 10명 중 9명이 ‘다른 당 지지자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다’고 답했다. 미국(88%), 이스라엘(83%)을 제쳤다. 정치권 대립은 제도 마비로 이어진다. 2023년 한 해 동안 국회 본회의가 정당 간 대립으로 무산된 사례는 27회로, 10년 전(12회)의 2배가 넘는다. 주요 법안의 평균 처리 기간도 10년 전보다 약 1.9배 길어졌다. 정부 신뢰도도 낮다. 2023년 한국 시민들의 중앙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약 3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9% 보다 낮았다.
양극화는 단순히 격차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균열이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23개 국가를 대상으로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6월 발표했다. 한국 성인 71%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은 그리스(81%), 일본(76%)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특히 한국은 이스라엘, 일본, 케냐, 폴란드와 함께 2024년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감소한 5개 국가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정치 양극화는 무능력한 정치인 당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비용을 초래한다. 정치적 양극화의 물결에 편승해 당선된 정치인들에게는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지속하려는 유인이 존재한다. 이는 또다시 사회를 양극화의 덫에 빠지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고려대학교 정치연구소 ‘정당의 시민사회 연계 약화가 정당정치의 개인화와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 연구팀(권혁용, 김동훈, 이한수)은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에서 선출되는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규범과 기준을 낮춘다는 점에서 진정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짚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이념적 양극화적 측면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소위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로, 상대 진영에 대한 불인정과 불관용, 그리고 내집단-외집단에 대한 호불호 격차가 양극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다”면서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 모델로의 변화를 모색해서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고 균등한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속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