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형벌 합리화 110개 우선 과제 선정
“경미한 행정의무 위반 과태료로 전환”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30일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기로 했다. 대신 임직원의 법인 자금 사적 사용이나 영업비밀 유출 등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을 막기 위해 대체입법을 추진한다.
배임죄는 다른 사람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 맡은 임무를 어기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으면서 일을 맡긴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때 성립하는 범죄다.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자산을 헐값에 넘기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영상 판단까지 배임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태스크포스) 당정협의를 열어 이러한 내용의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다. 110개 우선 추진과제를 통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경제 활동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당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TF 단장인 권칠승 의원은 협의회 직후 연 브리핑에서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나 지휘 의무를 다한 사업주들이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제재 필요성이 있더라도 그 수단이 반드시 형벌일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줄이거나 피해자 구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손해배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또 “경미한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과태료로 전환하겠다”며 “경미한 행정상 의무위반까지 형벌을 확보해 전과자를 양산하는 제도는 고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선(先)행정, 후(後)형벌 부과 원칙’을 적용해 “행정 조치만으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경우 우선 시정 명령이나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이를 불이행할 때 형벌을 부과하는 것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법률 간 형평성 확보를 위해 “타 법률과 비교해 형벌이 유독 과도한 경우 총량을 완화하거나 폐지하겠다”고도 했다. 이 밖에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민사책임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 소송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당정은 최대한 신속하게 대체 입법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권 의원은 “(대체 입법) 시한은 정한 바 없다”며 “법무부가 중심이 돼서 최대한 신속하게 대체 입법을 마련한다는 것까지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병기 원내대표는 앞선 모두발언에서 “과도한 경제형벌은 기업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소상공인까지 옥죄면서 경제 활력을 꺾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임죄”라면서 “민주당과 정부는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배임죄는 기업인의 정상적 경영 판단까지 범죄를 몰아 기업 운영과 투자에 부담을 줘왔다”며 “이 때문에 배임죄 개선은 재계의 오랜 숙원이자 수십 년간 요구돼 온 핵심 사안”이라고 했다. 이에 그는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없도록 대체 입법 등 실질적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고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그간 기업경영 활동을 옥죄는 요인으로 지목된 배임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선의의 사업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하겠다”며 “형벌은 경감하되 금전적 책임성을 강화해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억제하겠다”고 했다. 또 “경미한 의무 위반 사항은 과태료로 전환하는 등 국민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행정 제재로 바로잡을 수 있는 사안은 행정제재를 먼저 부과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당정 협의에는 김 원내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 권 단장 등 민주당 인사들과 정부 측 구 부총리, 정성호 법무부 장관, 김성환 환경부 장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