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확보 나선 정부...산업계, 녹색전환 속도전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73조 투자...SK 공급망 탄소배출 관리
한국 경제에 ‘녹색 전환’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제조업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철강과 석유화학, 반도체 등 기존 선진국이 이끌던 산업 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빠르게 잡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제조 강국 대열 합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한국은 기존 제조업 기반 위에서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역할을 맡아 자체 돌파 전략을 수립해야 할 상황이다.

2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5월 펴낸 ‘우리 제조업 국내 및 해외 수요 의존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제조업 국내총생산(GDP)은 4838억 달러로 세계 순위 6위를 기록했다. 또 국회예산정책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15.8%를 웃돌았다. 제조업 강국으로 평가받는 독일(20.1%)이나 일본(20.7%)보다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 아일랜드(31.0%)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제조업 의존도가 높다.
특히 한국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탄소 집약적 산업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세계적인 탈탄소 움직임과 녹색 전환 기조에 대응하려면 이런 탄소 집약적 산업 구조를 갖춘 한국은 더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이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CBAM)나 RE100 등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탄소국경세는 EU가 자체적으로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일종의 ‘관세’ 개념이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이 EU로 수출되면 이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23년 입법안이 승인돼 공식 발효됐으며 전환 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EU는 2030년까지 EU가 운영 중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RE100 역시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100은 2050년까지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력을 100%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기업의 자발적 약속이다. 기업의 합의로 강제성은 없지만, 글로벌 표준으로 주요 대기업이 속속 채용하고 있는 만큼 RE100 달성에 실패한 기업의 제품은 무역 장벽에 가로막히는 등 난관이 예상된다.
이런 제도들은 탄소 배출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비용을 부과한다. 미국 인플레 감축법(IRA) 사례처럼 한국도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산업 전략으로 접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대응은 아직 미진하다.
이날 ‘RE100 정보플랫폼’ 통계 분석 결과, 올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RE100 가입 기업은 444곳에 달하지만, 국내 기업은 36곳에 그친다. 해당 기업마저도 실제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의 열악한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과 높은 가격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또 EU의 CBAM은 철강업계에 큰 위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EU 수출은 철강에 집중돼 있다. 철강 분야의 EU 수출은 전체의 약 93.4%로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국내 철강업계의 탄소국경세 부담이 향후 10년간 3조 원에 달할 것이란 계산도 나온다.
정부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확대해 대응할 방침이다. 정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무탄소에너지(CFE) 발전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안정적인 원자력 발전 바탕 위에 청정에너지를 더해 국내 산업 현실에 맞는 에너지원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산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는 석탄 대신 수소로 쇳물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에 73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공정 때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다. 또 현대차그룹은 2045년 RE100 조기 달성을 목표로 국내외 사업장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직접 탄소중립위원회를 주재하는 등 그룹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정뿐 아니라 협력사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관리하며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 산업계의 녹색 전환을 위해선 국가와 기업 모두 관련 기술을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우현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이행전략 개발’ 보고서에서 “글로벌 녹색 산업 규범의 변화는 녹색전환 측면의 정책효과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며 “특히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들이 저탄소 기술을 광범위하게 수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맞아 기업은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비용 부담도 크다”며 “기업에 규제 강화에 대비해 기술 전환과 설비 개량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보조금, 보증제도 등 정부 인센티브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