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의존도 높은 한국에 치명타
미중 정상간 협상자리 적극 살려야

이번 10월 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포함한 아태연안 21개국이 참여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필자는 본 정상회의의 최우선 과제가 다자통상체제의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관세를 무기로 한 일방조치(unilateralism)는 동맹국을 포함한 무역상대국 경제뿐만 아니라 자국 경제에도 큰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의 블록화와 더불어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현 상태로라면 세계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일본, 호주, 한국 등 자유주의 동맹진영과 중국 중심의 러시아, 이란, 북한을 포함한 블록으로 나뉘게 되고 세계 제1, 2차대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연한 사건이 촉발요인이 되어 블록 간 대결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양 진영 중심국가 모두가 핵보유국들이라는 점에서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며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다(유엔 창설 당시의 모토인 ‘Never Again!’을 기억하자).
사실상 붕괴상태인 현재의 다자통상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로 형성된 관세무역일반협정(GATT)과 그간 8차례의 다자간 협상 결과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였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도 중국을 다자체제로 편입하여 시장경제화를 추진하려던 미국 전략의 하나였다.
이후 중국의 급성장과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커지면서 이른바 ‘중국 요인’에 의한 ‘글로벌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었다. 시진핑 주석 취임 후 경제적으로 ‘중국몽’과 대미관계에서의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면서 백도어를 통한 정보탈취 등을 이유로 통신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필두로 2012년 이후 대결이 본격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무기로 한 전쟁 선포로 현재 우리 경제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 그간 양국 간 경제동맹으로 일컬어져 왔던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이 무력화되었고 한국 경제는 상호관세뿐만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품목별 고관세 압력과 거대규모의 대미투자 압박에 눌려있는 상황이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특히 높은 우리 경제로서 이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1989년 창설 당시 12개국으로 출발한 APEC은 현재 규모로는 세계최대의 경제협력체다. 1993년 미국이 의장국으로서 첫 정상회의를 시애틀에서 가졌고, 올해 경주에서 열리는 33차 정상회의는 우리가 의장국 역할을 맡게 된다. 의장국으로서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변혁에 대한 APEC국가간 협력, △역사도시 경주가 상징하는 역사·문화·지역발전 관련 정책, △역내 경제 회복과 성장을 위한 기업의 참여와 역할분담 등 미리 설정한 주요 의제 외에 다자체제 복원을 위한 조치를 주요 의제에 포함하여 공동성명으로 발표하는 방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미국과 중국 정상이 모두 참여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만큼 이들 간 양자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 통상대표가 중재자로 나서서 양국 통상대표들 간 원활한 소통과 협력적인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장소, 시설 등 기회를 제공하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는 APEC과 같은 복수국 간(plurilateral) 모임을 전후하여 주요국 간 양자협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해와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1978년 카터 행정부 당시 캠프데이비드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수반을 특별히 불러 미국이 나서 2주간의 중재 끝에 합의를 이끌어 낸 경우가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이 협상 당사국인 양국에 특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작금의 다자체제 위기의 근원이 되고있는 미국과 중국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양국이 서로 비등한 협상력을 지니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미국의 관세부과에 대한 중국의 희토류 반격이 그 예가 된다) 양국은 세계 경제 1, 2위 국가라는 사실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이번 APEC 정상회의의 경주개최를 기화로 우리가 주도가 되어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APEC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결의함으로써 소규모 다자협력체제로 시작하는 방안이다.
이는 APEC FTA를 개방화 즉, 열린 FTA로 하여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으로서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 물줄기를 합쳐서 큰 강을 만드는 K-그랜드전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