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준비생들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정확히 오늘(27일)부터 삼성그룹의 신입사원 공개 채용(공채)이 시작됐기 때문인데요. 이날 오전부터 지원 사이트와 채용 정보 공유 플랫폼에서 '무한 새로 고침'을 하며 대기하던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마치 백화점 오픈을 기다리던 오픈런 행렬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이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면서 눈길을 끌었죠. 부랴부랴 자기소개서(자소서) 관련 팁을 얻으려는 이들도 긴 대기 줄(?)을 자랑합니다.
한때는 어김없이 찾아오던 '공채 시즌'이 있었습니다. 같은 시험장과 면접장에서 같은 절차를 거치는 공채는 한국 청년들에게 예측 가능한 '채용 사다리'였는데요.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기업이 상시·경력 채용으로 노선을 틀면서 채용 공고가 분산됐고 사실상 공채 시즌도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론 인공지능(AI)을 내세워 구조조정 바람을 일으키는 상황이기도 한데요. 삼성은 왜 정반대 행보를 택했을까요. 그리고 이 선택은 청년 구직난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삼성그룹은 이날 오전 10시께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돌입했습니다. 참여 계열사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중공업,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총 19곳입니다.
삼성 공채는 매년 뜨거운 화제를 모읍니다. 정확한 채용 규모는 발표되지 않지만 우선 수천 명 단위라 규모도 크고요. 계열사 분야도 정보기술(IT)부터 조선, 바이오, 금융, 유통 등 폭이 넓어 수많은 구직자의 시선을 한몸에 받죠.
여기에 삼성은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정기 공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등은 수시 및 상시 채용을 도입해 유연한 채용 공고를 내고 있죠. 반면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 제도를 도입한 이후 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1993년에는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한 것을 비롯해 1995년에는 지원 요건에서 학력을 제외하는 등 관행적 차별도 철폐한 주인공이죠.
앞서 2022년 삼성은 2026년까지 5년간 8만 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상반기보다 하반기 채용 규모가 더 큰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공채 규모는 1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죠.
지원서는 이날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삼성 채용 홈페이지 '삼성 커리어스’에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이후 △직무적합성 평가(9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10월) △면접(11월) △건강검진 순으로 채용 절차가 이어집니다.
삼성의 이번 공채는 이재용 회장이 강조해온 투자·고용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뜻에 따라 삼성은 채용 규모도 지속해 확대했는데요. 이 회장은 19일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앞서 열린 경제단체 및 기업인 간담회에서도 "대미 투자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지속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 있게 관련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삼성의 이번 공채가 큰 관심을 끄는 건 단순히 입사하고 싶은 꿈의 직장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정기 공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눈길을 끄는데요. 특히 공채만 줄어든 게 아니라 기존 임직원도 내보내는 기업이 적지 않은 현실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AI 채용 중단(AI Hiring Pause)'이 공식화(?)될 정도로 감원 바람이 거센 상황입니다. 테크 업계 해고 추적 사이트 레이오프에 따르면 지난해엔 551개 기업에서 15만 명 이상의 근로자가 회사를 떠났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인텔 등 150개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만 7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죠. 개발·기술 인력을 놓고 대규모 채용 경쟁을 벌였던 빅테크들이 AI 도입을 계기로 인력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고용시장 특성상 대규모 인원 감축은 드뭅니다. 다만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사실상 중단하면서 채용 시장이 바늘구멍이 됐는데요. 국내 채용 시장의 싸늘한 분위기는 다른 수치에서도 드러납니다.
13일 잡코리아가 발표한 '2025 상반기 취업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퇴사자는 20만 명으로 지난해 하반기(26만 명) 대비 22% 감소했습니다.
잡코리아는 경기 침체로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직장인들이 이직보다는 현 직장에 머무르며 안정을 꾀하는 구조적 변화가 발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곧 청년층의 신규 진입 문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입니다. '회사 밖은 더 춥다'는 농담이 일종의 공식이 되면서 신입 채용 기회가 더욱 줄어드는 건데요. 실제로 이 기간 경력과 무관하게 신입이 지원할 수 있는 공고는 지난해 하반기 대비 감소했지만, 경력직 채용 공고 비율은 3.1% 상승했습니다.
이 가운데 AI 인재를 향한 수요는 지속 증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죠. 잡코리아에 따르면 'AI' 키워드가 포함된 채용 공고는 같은 기간 8% 늘었는데요. 취업 및 이직에 AI 역량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겁니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결국 '신입사원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현실입니다. 이는 삼성의 공채 행보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죠.

특히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채라는 예측 가능한 진입 통로가 사라진 자리를 '스펙 경쟁'이 메우면서죠.
신입 채용 플랫폼 자소설닷컴이 공개한 '2025 상반기 신입 채용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채 지원자들의 평균 학점은 4.5 만점 기준 3.68점, 평균 토익 점수는 848점이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자격증 구성입니다. 컴퓨터활용능력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여전한 '스테디셀러'였지만 데이터 관련 자격증의 부상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데이터 분석 역량을 증명하는 ADSP(데이터분석 준전문가)와 SQLD(SQL 개발자) 자격증이 나란히 상위권에 올라 직무를 불문하고 데이터 활용 능력이 기본 역량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죠.
스펙 경쟁이 치열해진 배경에도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을 원하는 기업의 선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정량화된 스펙은 지원자의 성실성과 기본 역량을 보여주는 최소 기준이자, 언제든 수시 채용에 응시할 수 있다는 '준비 신호' 역할을 하는 셈인데요. 결국 채용 시장이 둔화하면서 지원자들이 서류 통과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정량화된 스펙을 끌어올렸고 이른바 스펙 인플레이션 현상이 가속화되는 겁니다.
여기에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경력 사원을 구하는 기업들, 그리고 전통적인 대학 교육을 받는 구직자 사이 미스매치(불일치) 현상까지 겹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구직난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는 상황. 삼성 공채를 향한 열기는 더 뜨거워질 전망입니다.



